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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없이 깨어남이 가능한지요?

작성자 : 박제추천수 : 0조회수 : 3,101

16-02-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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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닉네임 : [박제] 2016.02.22. 15:14


선생님, 지난 답글 감사합니다.

먼저, 지금까지의 공부를 간략히 적어보면 좀 헤매다 2014년 8월 퇴직 후 마음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깨달음뿐이라는 결심을 하고, 도서관에서 관계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달쯤 명상을 하던 중에 “깨달음 이것이다”를 접하고 벽공선생을 만나 면담 후 인연이 아니라 여기다 “이대로 완전하다”를 접하고는 대구 김선생을 만났죠. 그때가 지난 4월. 한 달 실험이 실패하고는 책과 강의에 의지해 받아들임을 실천해 나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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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진리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적용해 보니 우선 마음이 편해졌고 세상에 대한 시각이 내 안의 마음의 투영이라는데까지는 가슴이 함께했죠. 안이 변하면 밖은 절로 변한다는 사실도 분명해 졌고요.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다(내 마음의 편안과 행동의 변화가 없으니) 김선생 동여상 목록들 사이에서 성함이 보여 먼저 카페로 갔죠.

 

“구하지 않는 삶, 그 완전한 자유 ”보는 순간 “이대로 완전함”을 아시는 분이더군요. 쓰신 글 몇 편 읽고는 강의를 듣기 시작한 게 올해 1월 말쯤. 용어들이 낯선 게 있었지만 풀이들을 들으면 이해가 되었습니다. 앞선 김선생의 강의가 받쳐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진리가 만물을 낳았으며,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우리는 이미 부처), 인연법, 불이법 등이 그냥 받아들여졌습니다. 진리의 또 다른 이름이란 것도 알겠습디다.

그런데 내가 변해야 하는데 그건 모르겠습디다. 머릿속은 덜 복잡해졌는데도, 수많은 용어들이 얼키고설키면서도 받아들여지는 편안함이라 할까요! 그런 것!

 

그러다 열흘쯤 전“가장 좋은 수행은 가족이라는 말과, 무조건 예 하라는 말이 왠지 가슴을 탕”하고 쳤습니다. 불과 나흘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마음이 참 편하다는 것과 ‘내다’하는 게 내려지는 느낌이 옵디다.

뒤이어 “모든 다툼은 옳음과 옳음일 뿐”이란 글을 읽으면서 또 한번 쾅하며 가슴이 열리고 일체 다툼의 실상이 보여졌습니다. 시비분별하던 것들이 떨어져나가는 이 기분. 그래서 ‘예’밖에 없구나! 다툼이 있다면 모두 내 탓일 뿐! 왜 똑같은 말들을 수없이 들었는데 그게 와 닿지 않았을까? 아하, 인연법.

닷새쯤 전 “일체가 법이다”하며 사는 게 어떤 수행보다 낫다는 말과, 태정이할배 이야기가 떠올라 바로 실행. ‘어, 정말 편하네’ 였습니다.

이틀 전, 글을 올린 것은 그날 새벽에 스쳐가는 것들입니다.

 

딱 꼬집어 ‘이것이다’ 하기는 어려운 이 마음의 여유와 편안함은 무엇인지?

글을 쓰면서 이제 집착할 게 없겠다(사리분별 않음)는 생각이 스치네요. “생사를 벗어났다, 삶이 없는데 죽음이 있느냐”는 게 같은 말 아닌가!

 

왜 이리 서두가 길어졌냐면 제가 읽고 들은 바의 견성은 저에게 없었던 듯합니다.

하지만 도가 만물을 낳았음을 확신하고 있으며, 이 진실을 믿지 못하면 더 이상의 탐구는 소용없음을 압니다. 그러기에 오직 ‘지금’만이 진리가 아닌지요?

지금만이 실재하기에 불이법이요,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요, 인연법이 아닙니까?

 

왜 이리 확신이 들까요? 제가 증인이란 생각입니다.

우선 여여하게 살 수 있을 듯합니다. 마음을, 지금 마음을 보면 편안합니다.(흔들리면서도 그저 그런!)

혹시나 해서 듣지 않았던 선생님 강의 둘을, 풀이 하기 전에 원문만 듣는데 이해가 되며 나중 풀이 말씀과 일치하더군요.

 

이제 제게 착각 하나 떨어졌다고 가정하면, “저 수많은 경전들이 코 푼 휴지보다 못하다”는 말씀이 참으로 진실이네요. 다만 본래면목을 알 뿐! 마음의 시각이 조금 변한 것이니(제행무상) 얻은 게 없네요. 실무소득이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얻은 게 있다면 거짓이다. 진짜 이게 전부란 말인가? 평생을 도를 구하던 이라면 실망할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가로막은 걸까?

 

아하,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님을 보아야 여래를 본다.

조금 전까지도 깨달음이란 모양에 매였구나! 견성이 있어야 한다는 모양, 견성을 하면 태정이할배와 같은 부류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모양에!

깨달음조차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요, 이 인연법을 벗어날 수 없구나! 하기야 불이법이 아닌가! 변화만이, 내가 없음이, 인연만이 진리라! 이 지구상에 70억 개의 사과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도 깨달음은 이럴 것이란 상을 또 짓고 있었구나! 앞도 인연이요, 뒤도 인연일 뿐.

 

일체가 깨달아 있군요!

그러니 도를 아는 이는 사람보다는 동물이 다음으로 식물, 무생물들이 완전한 삼매에 있다는 진실을 말했군요! 티끌 속에 수미산이 들어있다고 했군요! 삼라만상 일체 평등! 이를 아는 이는 겸손밖에 무엇이 있을까? 사랑밖에 뭐가 있을까? “구하지 않는 삶 그 완전한 자유”외에.......준다는 생각도 없이 주는 건 혹시 있을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자기를 가장 괴롭히는 건 자기네요. 아니 생각이네요. 자기의 생각 하나가 자기를 괴롭히며 남도 괴롭히는 이 불이법!

지난번 가르침 주신 의시해본(疑是解本)을 생각하며

배움 청합니다.

댓글목록

청정심님의 댓글

청정심  16.02.23. 17:43 


박제님 혹시 예전에 저와 같은지 궁굼하여 적어보는데요...깨달은 것은 같은데 뭔가 확실하지 않는 느낌이신가요?
그렇다면 뭔가 한가지가 가로막는 겁니다.. 그걸 잘 찾아 보세염..내가 어디에 미혹되었는지..깨달음은 그렇게 신비한 것이 아닙니다....그리고 이미 깨달아 있으니 찾지 않는게 좋습니다..그것은 서울에서 서울가는 길 물어보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박제님의 댓글

박제  16.02.23. 19:23 


정말 고맙습니다.
분명히 변화가 온 건 확신하는데 깨달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견성 때 있다는, 한순간 사물들이 사라지고 완전한 허공을 보았거나, 갑짜기 몸이 몸이 아니라는 느낌, 눈앞의 사물들 일체가 하나라는 느낌 등의 특별한 체험이 있었음이 없기에 여쭤본 겁니다. 도움 바랍니다.

청정심님의 댓글

청정심  16.02.23. 20:24 


그건 그냥 별거 아니예요...왜냐면 그것이(체험) 대상이 되어 버리면 둘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무리 그럴싸한 체험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중요한 것은 앎에 자리가 분명한가 하는 거지요...그것 밖에 없어요..특별한 체험이 없이도 가능해요..홧팅! ^^

청정심님의 댓글

청정심  16.02.24. 09:51 


청정심  체험이 있든 없든 말에 속지 마셔야 합니다.. 내가 분명히 그자리를 알았다면 그것으로 된것입니다...청정심도 처음엔 찾게되고 헤매게 되고 그랬는데..시간이 지나면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막상 알게 되었을 땐 체험도 없고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어서 웃었답니다..얻기보다는 오히려 잃었습니다..ㅎㅎ

박제님의 댓글

박제  16.02.24. 10:45 


고맙습니다.
오늘 새벽에 풀렸습니다. 언어가 가로막고 있었네요.
울산입니다. 인연 닿으면 좋겠네요.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또한 기뻐지 아니한가?

박제님의 댓글

박제  16.02.24. 12:57 


내일, 무슨 일 있는지요?
내일이 법회 일이네요. 가겠습니다.

눈내리면님의 댓글

눈내리면  16.03.01. 10:25 


감사합니다.

눈내리면님의 댓글

눈내리면  16.03.01. 10:25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