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마의장

야단법석

전국의 선사관계자에게 보내는 편지 --- 두번째

작성자 : 무무추천수 : 0조회수 : 3,368

15-11-27 00:41

본문

옛날엔  진정한 無慾인 사람들이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지구인들은 모두 기초교육을 받고

학문에 깃들여져 타인을 굴복시키도록  교육받고 경쟁하고 싸울것 

의의를 가질것. 목적과계획과 실행력의

성과를 평가 받고  자라온탓에 욕망을  善으로 받아들이도록 철저하게

주입받으며  성장했다

 

그런데 그런사람들이  선방으로 간다  제아무리 때리고  발로 차고  떨어뜨렸다고 해서

그들이 지금까지

30년이나 짊어진 교육  즉 욕망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 마음을 죽일수 있을까 

그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인간사회에서  받은 교육과  자신마져  전면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에 떨어지지 않은 한 

욕망은 없어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애초 부정하는  자기는 없다고  禪에서 말 하지만  버릴것 없는 자기가  애초에 없다는것

그 자체가  그 사람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기부정 바로 그것이다

 

우선 禪은 지나치게  하나의 문화적 측면만을 갖고 있다

 

비록 선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인도나 티벳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디서든 무언가에 

속해있거나 무언가의

먼지를 등에 짊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 본래의 본성은  그 어떤것에도  전혀 속해있지 않다

 

이렇게썩은 선사들중에서도  드물게  몇군데의  선사만은 가까스로  제정신을 유지하고

좌선의 환경또한 참신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문하가 되면  무슨 추태일까 ?

 

나의 바람과 방편은 그들이 편안하게 죽을수 있는  그날  단 그날 그 순간을  위해서이다

 

깨달음은  세계를 위한것이 아니라  본래는 개개인의 죽는 순간을  위한것이기 때문이다 

그 의식의 현상은

가끔 세간에서의  평안을 초래할뿐  별도의 평안을  위해  깨달음이 있을리는  없기때문이다

 

일찍이 무수한  무명의 사람들이 대오 했다 

그들은 설법을 하지 않았다  설법의 방편도 없고  의무도 없었다

 

비록 역사에는  남아있지 않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대오 했다 

 그들이 놓인 환경은  비참하기 그지

없고 죽음이 언제나 드리워져 있는 환경이었다 

어찌 된 이유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고  자연스럽게 죽어간 적이없다

무명의 붓다들은  언제나 전란이나  기아 시대에 있었다  그곳의 방편은  다름아닌 

핑계아닌 죽음이다

 

사람이 미망의 근저로부터  벗어나려면  바로 그앞에서  즉 극한적인  공포로 부터  벗어나야 했다

 

내가 말하는  공포란 위험한 모험이 아니고  다리 난간에서 뛰어 내리는것도 아니다

진정한 공포 그것은 완전한  자기 소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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