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형식적인 선사의 한계--- 첫번째 탐구
작성자 : 무무추천수 : 0조회수 : 3,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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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은 언제나 똑같다
시대의 생활양식에따라 조금씩 변화는 있지만
절이란 예로부터 똑같은 모습이다 작법도 형식도 동일하다 그러나 다른것이 있다면 세간에서 절로 들어가는 중생이 늘 똑같지 않을뿐이다
즉 절은 줄곳 똑같은것으로 法으로 유지한다
그러나 매일같이 세간은 변화하고 있고 점점 다각적으로 혼란스러워 지고 있다 중생의 눈으로 보면 절은 그저 한결같이 형식을 유지 하는것일뿐이다
반면 중생의 세계는 날로 지식과정보의 홍수가 물밀듯이 밀려든다
禪과 그저 앉으라는 한마디로는 더 이상 모든것을 내려놓을수 없을 정도로 세간사람들의 고민은 너무 다양해 졌다 그러니 禪은 그 시대의 전통적인 형식으로도 충분한 방편이 되었다 기껏해야 몇종류의 대립하는 불교와기독교를 만날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종교는 아닌데 종교와 유사한 각종정신세계 모양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가히 혜아리기 어렵다
옛날엔 3년을 염불해도 고뇌로부터 해방될수 없었다
진언종은 6년간 주력을 했지만 끝내 성취하지 못해서
결국은 자 이제 선사로 가자는 슬로건이 제창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길다운길을 전부 거치는데 무려 30년이나 걸린다 이를 가망 없다고 일찌감치 포기하기에는 사람마다 자각의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자는 20년이 소요되어도 세속적인 종교나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가망 없다고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도 잘 알고 있는바와같이 터무니없이 세속적인 善이 범람하고 있다 문제는 명칭이나 종파가 아니고 가사나 절도 아니다
우리들의 진정한 본질은 언제나 완전 無明일뿐이다
가령 절생활이란 아무리 힘들어도 그곳은 스승이있는 그야말로 24시간이 法을 위한 장소이다 이것은 세간의 수행자들에 의하면 가히 엄청난 사치라 할 만 하다
그러나 세간이란것은 절도 세간도 일체의 구별없이 오로지 일은일 가사는 가사입니다 라고 주장해도 그것은 지나치게 무리이다
그렇다면 老師들 당신들이 절에서 나와 노사로써 설법하지 않고 완전히 환속하여 어느 요리집에서 혹은 회사에서 폭력단 사무실에서 혹은 카바레에서 혹은 방문 판매하는 새일즈 현장에서 과연 법을 확대할수는 없는것일까
그러기는 커녕 승려나 법사는 잘못하면 평범한 월급쟁이로써의 직장생활도 헤내기 어려울지는 모른다 이는 내가 모든세간에 적응했기때문에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는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수행자에게 세간이라는것은 얼마나 절실하게 고뇌하는것인가를 이해하도록 역설하고 있는것이다 세간에는 법에 적합한 작업이나 시간따위는 없다 그저 일하고 좀더벌고 영업성적때문에 상대를 밀어내고 상냥하고 명랑하게 아침을 하고 아부를 하라는식으로 하등의 法 부스러기조차 없는것이 세간이다
그러니 사람이 절로들어가는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法을 구하고 있는자에게는 각오도 필요없다 法이 목적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法때문에 절에가는데 무슨각오가 필요할까
마치 아이들이 즐거운 기분으로 디즈니랜드에 가는것과 같을 것이다 그곳에선 아무리 얻어 맞아도 한결같이 法의 생활이다 하지만 그속에는 본질적인 고뇌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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