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마의장

야단법석

한강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을 바라보며...

작성자 : 덕인추천수 : 0조회수 : 3,815

16-05-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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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바라보면서 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공꾸르상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세계 3대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우리나라 작가가 수상을 한 것이다.
그 동안 우리 문학계는 그 얼마나 노벨문학상 소식에 목말라 했던가? 
이미 80대에 이른 노시인 고은의 어깨에 우리민족의 문학적 사명(?)이라는 엄청난 짐을 몽땅 지우고는 그 한 소식을 기다리며 매년 실망하기가 그 몇 해였던가?
또한 우리 정부와 문학계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 그 얼마나 많은 투자와 노력을 했던가 말이다.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번역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일본을 비롯 여타 나라들에 비해 독서애호인구가 현저하게 떨어지면서도 노벨상을 목표로 정부가 자본력으로 문학사업을 리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노벨상 소식에 목을 매는 한국인들을 마치 졸부 취급하며 비꼬는 기사가 미국의 "뉴요커 New Yorker"誌에 실릴 정도였으니…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내심 민망함과 부끄러움 그리고 그렇게 조곤조곤, 잘근잘근 십어대는 장편의 기사를 쓴 미국 기자에 대한 얄미운 마음이 올라왔었다. 

그런데 의외 쾌보가 영국에서 날아들었다.  노벨상이 우리에게 침묵하는 와중에 뜻밖에도 한강작가가 장쾌한 문학계의 홈런을 한 방 날려 준 것이다.
그런데 노벨상 못지 않은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한강작가의 모습에서는 그간의 목마름이 시원하게 해소되는 환희의 들뜸도 억눌렸던 서러움이 감격으로 승화되는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동네 글짓기 대회에서 여러번 수상한 적이 있는 우등생이 그저 또다른 백일장에서 일등 먹었을 때의 담담한 기쁨이랄까?  그 뿐이었다.    수상 트로피를 받으며 기쁨의 눈물을 훔쳐내던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의 모습과도 대조를 이룰 정도였다.    사실 금메달같은 것을 따고도  펑펑 우는 모습을 보이는 쪽은 줄곧 우리 한국인들이곤 했는데 말이다.  

한강작가…  문인으로서 엄청난 명예인데 어쩜 저렇게 담담할 수가 있을까?  

한강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데 일등 공헌을 한 사람은 역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일 것이다.  
젊고 솜씨 뛰어난 영국인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문학은 미지의 보물창고와 같습니다.  한국이 잘 안 알려져서 한국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한국과 같이 잘 살고 발달한 선진국에는 분명히 일본문학 못지 않은 훌륭한 문학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데보라 스미스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지만, 노벨상을 수상하고도 남을만한 훌륭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예로부터 무수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팔만대장경을 만들고 선문염송을 집대성해내고, 유교를 받아들여서는 이황, 이이와 같은 세계적 학자를 배출시키고 성리학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켰던 풍부한 학문적, 문화적 저력이 있는 민족이었다.  그런 풍부한 문화적 토양 위에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인생을 고뇌하고 탐구하던 문인들과 예술인들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예술작품을 배출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우리가 가난하고 약소국이다 보니 세계가 우리의 문학과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뿐이다.  

"훌륭한 번역가와 편집자 덕분에 이런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만 앞으로 이런 일들이 낯설지는 않아 질 것 입니다."

맨부커상 수상식에서 한강작가는 무척이나 담담한 어조로 수상 소감을 말했다.  그녀의 담담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이 소감이 내 귀에는 이렇게 환청으로 들린다.

"뭐, 이게 별건 감유?  알아봐 주시니 감사는 헌데유, 사실 울 동네가면 이런 작품은 지천에 널렸슈…."

우리는 이미 엄청난 보물창고를 갖고 있으면서도 노벨상 작가 하나 없다고 주눅이 들어했고 초조해 했었다.  그리고 노벨상을 향해  억지스런 몸짓으로 구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강작가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우리는 이제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을 수 있을 것 같다.  노벨상을 향해 억지스런 구애를 하는 것이아니라, 그저 우리식으로 우리 것을 즐기고 만끽하며 잘 살기만 하면 될 것 아닌가 싶다.  그러면 우리걸 알아달라고 선전하지 않더라도 보물을 캐고 싶어하는 재능있는 외국의 번역가들이 한국문학과 예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 올 터이니 말이다.  

<갖다 부치기>  일체 중생이 성불했다고 한다.  그말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이미 부처라는 것이다.  그러니 부처를 향해, 부처를 얻으려 바깥을 향해 억지스럽고 구차한 몸짓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밥먹고…내 모습 있는 그 대로 받아들이고 자-알 살면 되는 것 아닐까?        지도무난 유혐간택…  진정 그렇게 자-알 산다면  깨달음이 우리를 찾을 때, 한강작가처럼 한 마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담담하게 말이다.  

"어쩌다 이런 맛도 봅니다만 결코 낯설지 않군요. ㅎㅎㅎ  "

환희에 뜰든 것도 아니요, 감격이 복받치는 것도 아니요, 정말 편안하고 담담한 어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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