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마의장

야단법석

[선원장님의 저서소개] 있는 그대로 완전한 깨달음

작성자 : 조나단추천수 : 0조회수 : 4,310

16-09-22 19:13

본문

 

시비와 분별의 잣대를 무너뜨려

​일체에 걸림 없는 무사인無事人!

 이 법을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반드시 시비와 분별의 잣대를 무너뜨려 일체에 걸림이 없고 

일체 마음이 일지 않는, 만 가지 인연이 끊어져 마음 가는 곳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공부를 끝낸 무위도인無爲道人이라 할 것이다. 

- 최상승 깨달음에 이르는 길 -

《있는 그대로 완전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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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붕 지음/비움과소통 刊 

신국판ㅣ무선ㅣ흑백ㅣ364쪽ㅣ13,800원 

ISBN 979-11-6016-006-2 03220 

2016년 9월 9일 발행(13일부터 배본) 

 

"설사 깨치지 못해도 여러분의 불성자리는 본래 생사가 없다”
있는 그대로 완전한 최상승 깨달음에 이르는 길
적천 윤기붕 거사가 체험한 돈오頓悟와 보림保任의 길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병에 들면 병을 고치고 일이 생기면 바로잡는 것처럼 고통 역시 없애고 싶어 한다. 이 ‘한 법’을 깨달으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신적 고통과 때론 육체적 고통의 일부까지도 한번에 날려 버리기 때문에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으뜸가는 방법이어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이 깨달음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어떤 선사가 말한 것처럼 ‘도를 알기는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보다 쉬운’ 것이다. 깨달으려고 마음만 낸다면 말이다. 

 

그럼 깨달음은 도대체 무엇을 깨닫는다는 것인가? 

첫째. 일체가 한 법임을 깨닫는 것이다. 

둘째. 일체가 한 법이니 나 역시 개체의 육체에 갇힌 작은 존재가 아니라 이 한 법 그 자체임을 깨닫는 것이다. 

셋째. 그래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모든 현상이 모두 이 한 법의 일이요 또한 나의 일이어서 어떤 것이든 어떤 현상이든 어떤 일이든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원만(圓滿) 구족(具足)하여 티끌만큼도 시비할 것도 분별할 것도 없음을 깨달아 일체의 시비분별을 여의고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넷째. 그러면 그 대가의 열매로 다시는 사라지지 않을 자유와 평화가 오고, 깨달음으로 얻은 자유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다시는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마조스님께서는 “한번 깨달으면 영원히 깨달아서 다시는 미혹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생각은 아무리 고집을 부리더라도 기댈 곳이 없으면 그대로 꼬리를 내린다. 그래서 진리의 실상을 알면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않음을 알고 다시는 준동(蠢動)하지 않고 꼬리를 내린다. 그리고 한번 꼬리를 내린 생각은 자신이 얻은 자유와 평화에 정착(定着)하여 다시는 미혹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깨달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행복의 열쇠요 자유의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진정으로 행복을 바란다면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고통스런 삶과 구도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자살 직전까지 갔던 적천 윤기붕 거사는 문득. 모든 것이 생각이 짓고 있으며 일체가 한 법임을 깨닫고 모든 고통과 문제를 해결한 후 이를 수행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일대사를 해결한 후 인연 닿는 사람들에게 일체가 한 법(法)이요, 모든 사람이 매순간 지금 이 모습 이대로 바로 법이요 부처인 돈법(頓法)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대구와 서울에 즉심선원(구하지 않는 삶 그 완전한 자유)을 열어 진리를 설하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돈오(頓悟: 단박 깨침) 체험과 오후(悟後: 깨달은 이후의 닦는 바 없이 닦는 공부) 수행에 대해 법문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한 선(禪)과 마음공부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갈수록 물질문명에 찌들어 존재의 이유와 삶의 목적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 공부인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책 속의 한 구절

​ 

☞ 우주에 생겨나고 변하고 사라지는 것은 모두가 다 딱 그러한 적합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이 한 법이 부여하고 있으므로 일체가 모두 법 그 자체이다. 어떤 삿됨(즉, 인간처럼 감정에 의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없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또 자신이 한 개체에 갇힌 작은 존재가 아닌 이 법 자체라는 것을 알면 삶에서 모든 의심이 사라진다. 그러면 일체의 시비와 분별이 사라지면서, 스스로 자신을 묶었던 모든 집착과 욕심이 사라진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요, 깨달음의 열매이다. (9p) 

 

☞ 달마조사께서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에서 이입(理入)에 대해 말하기를 

‘첫째 원리적인 방법이란 경전에 의해서 불교의 본질을 알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똑같은 진리의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감각과 망상에 의해 가려져 있어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라고 하여 일체가 이미 부처인데 사람이 스스로 감각과 망상에 속아서 자신이 부처임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지만 식심견성(識心見性), 즉, 자신의 본래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고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는 중생자도(衆生自度)하는 최상승에 비해 대승은 너와 내가 있고 단계가 있다. 최상승과 대승을 분리하는 이유는 이러한 너와 나, 그리고 단계 때문이다. 

그래서 달마 무심론 등, 선가(禪家)의 조사들은 보살도 아직 부처의 경지에 들지 못한다고 하여 함이 없는 부처, 즉, 해가 스스로 비춘다는 생각이 없지만 빛과 볕을 주어 모든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무위와 무심의 경지를 최상승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일체가 본래 부처인데 스스로 감각과 망상에 속아 있으니 그것만 걷어내면 될 뿐, 다시 부처가 되기 위해 따로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최상승이다. (181p) 

 

☞ “이보시오 원효대사! 지금 마땅히 구제받아야 할 중생을 여기에 두고 그대는 어디로 가서 별도로 중생을 제도(濟度)하겠단 말이오?” 라고 자신에게 호통치듯 말했던 대안대사 말의 참뜻이 이해가 되었다. 

정작 구제받아야 할 사람은 북촌 사람도 아니고 감천사 사람도 아니었다. 바로 중생을 제도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도 분별심(分別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자신의 그 마음이 진정으로 제도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금강경(金剛經) 3분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 보면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니 ‘있는바 일체중생(一切衆生)들을 내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여 적멸(寂滅)케 하겠다.’라고 하라. 이처럼 모든 중생이 제도 되었으나 한 중생도 제도 된 적이 없느니라. 왜 그런가? 만약 보살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니라.” 

라고 하였다. 그가 감천사에서 방울대사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은 부목이 부목다워야 하는데 원효는 지나치게 수행을 한 사람의 근본 자리를 드러내었기 때문이었다. 

보살(菩薩)이 화작(化作)하는 모습은 즉 세속(世俗)에 들어가 중생과 같은 모습으로 같이 살아가면서 제도하는 것을 말하는데, 세속에 들어가는 것은 심우도(尋牛圖) 또는 십우도(十牛圖)에서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纏垂手)의 단계이고, 거기서 사람들과 어울려 교화하는 것을 화작(化作)이라고 한다. 화작은 심우도에서 이미 소도 없고 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보살의 모습이 아니라 중생의 모습으로 제도한다는 것이요, 또 제도한다는 마음조차 없이 같이 살아가는 것을 일러 화작(化作)이라고 한다. (349P) 

 

☞ 대원경지는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거울처럼 일체의 시비와 분별을 여의고 있는 그대로 비추어준다는 말이다. 무분별지나 대원경지나 같은 말인데, 여기에는 안팎이 사라지고, 대상과 나의 경계도 사라져 ‘나’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원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알았다는 마음조차 버리고, 생각이 없다는 생각조차 버렸기 때문에 시장바닥에 뛰어들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미 먼저 시장바닥에 뛰어든 보임(保任: 보림이라고도 읽는다)의 스승인 대안스님과 함께할 수 있었다. 

나는 참 공부의 끝은 이와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 도리를 아는 것은 이제 겨우 아이로 태어나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밖에 다름이 아니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여 몸이 자라고 뼈와 근육이 튼튼해져서 제대로 생각도 하고 걷고 뛰며 일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 노릇을 한다고 하듯이, 이 도리를 깨치고 난 뒤에도 선사어록(禪師語錄)이나 선지식(善知識)의 법문(法門)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기르는 보임 시간을 거쳐, 분별이 사라지고 내가 사라져서 무심(無心)이 되어야 비로소 이 공부가 끝나는 것이다. (351p) 

 

☞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의술(醫術)은 총명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의술은 총명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한다. “말을 못한다고 아픈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의원(醫員)이 아니다.” 

깨달음도 마찬가지이다. 깨달음은 총명한 사람이 얻는 것이 아니다. 깊은 사람이 얻고 법을 전달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은 자가 사람들을 마치 병자(病者)들을 대하듯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그가 얻은 깨달음은 휴짓조각보다 못하고, 설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보임(保任)을 통한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이는 깨달아도 안다는 것이 남아 있어 자신의 앎에 갇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안다는 상을 지어 그 속에 머물지 말고, 인연(因緣)의 세밀함을 살펴 일체 만법과 모든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인연(因緣)의 산물(産物)임을 알아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사랑할 수 있고 그에게 맞는 방편(方便)을 써 그에게 덮인 무명(無明)의 껍질을 벗겨 줄 수 있다. 이것은 총명함보다 깊은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깨달은 자는 부디 총명함을 내세우기보다 깊은 사람이 되어 병자의 병과 아픔을 살피듯 사람의 마음과 그 아픔과 인연을 살펴 그들을 자유의 땅으로 이끌어 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을 헤아리는 깊은 마음은 꼭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한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자는 이것을 명심하여 좋은 인연으로 밝은 눈을 얻었을 때 애써 밝힌 등불에 그릇을 덮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연에 충실한 자요. 본래부터 아무 일도 없는 무심도인의 삶이다. (360p) 

 

 

※ 저자 소개 

 

지은이 적천 윤기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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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대구 출생. 

1981년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99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품어 왔던 깨달음의 갈증이 문득 증폭이 되어 공부에 매진하던 중, 깨달음의 상(相)이 화두의 의단(疑團)처럼 목의 가시로 걸려 극심한 고통으로 4개월을 헤맸다. 너무나 힘든 고통 때문에 깨달음을 포기하고 차라리 죽어버리면 이런 고통이 사라지지 않겠냐는 생각에 몇 번이나 자살도 생각하며 뒹굴다가 4개월이 되던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이 생각이 짓고 있으며 일체가 한 법임을 깨닫고 모든 고통과 문제를 해결했다. 그 후 사람들에게 일체가 한 법(法)이요, 모든 사람이 다 매순간 지금 이 모습 이대로 바로 법이요 부처인 돈법(頓法)을 알리고 있다. 

현재 : 대구와 서울에 즉심선원(구하지 않는 삶 그 완전한 자유)을 열어 법을 설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장소와 시간이 상세하게 나와 있음) 

홈페이지 : ‘즉심선원(구하지 않는 삶 그 완전한 자유)’  

           (http://beinnow.kr), (http://beinnow.net) 

다음카페 : ‘즉심선원(구하지 않는 삶 그 완전한 자유)’ 

           (http://cafe.daum.net/beinnow) 

저서 : 구하지 않는 삶 그 완전한 자유(비움과소통) 

 

목 차 

 

서언: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이유 

 

1. 일체가 한 법이다(불이법 不二法) 

2. 연기법(緣起法), 그리고 인(因) 연(緣) 과(果) 

3. 견성(見性)과 돈오(頓悟) 

4. 제법실상 여실지견(諸法實相 如實知見) 

5. 제행무상(諸法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6. 무주(無住) 

7. 무상(無相) 

8. 무념(無念) 

9. 생사가 열반 

10. 물아일체 

11.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12. 불교 용어는 상대가 없는 절대적인 것을 말한다 

13. 바라밀(波羅密) 

14. 삼신불에 귀의함 

15. 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16. 좌선(坐禪) 

17. 선정(禪定) 

18. 중도(中道) 

19. 정혜(定慧)함께 쓰다 

20. 청정한 성품 

21. 선과 악(善惡) 

22. 오매일여(寤寐一如) 

23. 무기(無記)에 빠짐 

24. 무소유(無所有) 

25. 스스로 법임을 믿어라 

26. 법은 어렵지 않다 

27, 깨달음은 삶이다 

28. 가르치는 근본(根本)과 방편(方便) 

29. 우리가 바로 법(法)이요 불성(佛性)이다 

30. 부처가 되려고 하지마라 

31. 아는 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32. 생각으로 헤아리지 마라 

33. 깨어있음과 알아차림 

34. 본래자리에는 차별이 없다 

35. 원효(元曉)의 화작(化作) 

36. 만 가지 인연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길이 없어지다. 

맺는 말: 깊은 사람이 되라. 본래 아무 일도 없다

 

문의 - 도서출판 비움과소통 

Tel. 02-2632-8739 Fax. 0505-115-2068 buddhapia5@daum.net   

 

댓글목록

조나단님의 댓글

홈페이지가 오픈된지 얼마 안되어서 그리고 처음 오신분들은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
선생님의 저서를 찾기 힘드신거 같아서 이곳 야단법석 메뉴에 선생님의 저서소개글을 올립니다.
이용하시다 불편한 점 있으시면 작으마한 사항이라도 좋으니 선원 홈페이지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삐카님의 댓글

멋집니다.
제목도, 부제도, 제목 후보였던 '깨달아야 하는 이유'가 서론에 들어간 것도.
무엇보다 내용이 ......

강축드립니다.
조만간 모임장소의 의자가 부족해 지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 ^^

삐카님의 댓글

조나단 님께
건의 1:
현재는 N(ew)라는 표시가 글 제목에만 표시되기 때문에 해당 submenu (예를 들어 야단법석)을 클릭해서
글들의 list를 보기 전까지는 새글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안 내용 : 메인 메뉴 (예 : 탁마의 장)나 submenu (예 : 야단법석)에도 동시에 new가 표시되었으면 합니다.
              최소한 submenu에는 꼭 동시에 표시 되었으면 합니다.
사유 : 사용자의 관심은 새 글에 있는데 현재로는 어느 메뉴로 들어가야 할지 알수가 없음.

건의 2 :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위해 홈페이지 개선 제안 (서브) 메뉴를 한시적으로 운영했으면 합니다. 
          아니면 한줄 메모에 제안 사항을 올리도록 공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건의 3 : 현재 공지 사항에 1,2,3번의 번은 카페시절 공지 사항으로 새 집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지 사항 1번은 홈페이지 개설 안내(및 축하)를 올렸으면 합니다. (나중에 역사가 됨)
          그리고 야단번석 257번 글, 선원장 소개 변경 안내도 성격상 공지 사항으로 하는 게 맞을 듯~

윤기붕님의 댓글

먼저 건의 1의 경우는 저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렇게 되면 홈페이지 전체가 지저분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 첫 화면 아래에 있는 새글 소개란의 제목을 클릭하면 자연스럽게 서브메뉴로 이동을 하게 되어 있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사회적인 존재라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글이 어디 메뉴에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아질 것입니다.

건의 2의 경우도 생각해봤지만, 그동안 카페에 익숙한 습관때문에 홈페이지가 아닌 카페분위기로 만들려는 의견이 분분하여 운영자들이 상의해서 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익숙해지실 것입니다.

건의 3 의 공지 1과 2는 삭제하였고 3도 내용을 바꿔놨습니다. 미처 보지 못한 점을 발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원장 소개는 제가 일부러 거기에 올린 것입니다.
그리고 홈페이지 개설을 1번 공지로 하자는 것에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이 제 생각에는 굳이 그렇게 야단스러울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하지 않아도 홈페이지 개설 날짜는 게시판의 첫 게시글을 보면 절로 알게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삐카님의 댓글

아 그렇군요.
그래도 하난 맞혔네요. ^^

청정심님의 댓글

이번 책은 소제목만 보아도 정말 걸직~~하게 쓰셨네요..^^*
필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당... 새책 탄생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