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참된 명상-아디야 샨티
작성자 : 청정심추천수 : 0조회수 : 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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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참된 명상은 방향도 목표도, 방법도 없습니다.
참된 명상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데서 시작한다.
참된 명상은 자연스러운 상태를 향해 가는 것도 아니며,
자연스러운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사실 맨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시작한다.
내가 오래 전에 명상하는 자, 통제하는 자를 포기하기 시작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기 시작하면서 발견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리고 내가 얻으려고 애썼던 평화와 고요는 이미 여기에 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내가 해야 했던 일은 그것들을 얻으려는 노력을 멈추는 것이 전부였다.
가만히 앉아서 나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
참된 명상에서는 알아차림으로 있는 데 중점을 둡니다.
즉, 대상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알아차림 그 자체로서 편안히 쉬는데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알아차림은 모든 대상이 그 안에서 일어나고 가라앉는 근원입니다.
당신이 부드럽게 이완되어 알아차림으로 존재하며 귀를 기울일 때,
존재의 고요함은 더욱 분명하게 의식되어 편히 쉬며 머무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어떠한 목적이나 기대가 없는 열린 수용의 자세는 침묵과 고용함의 현존이 당신의
자연스러운 상태로서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침묵과 고요함은 어떤 상태가 아니며, 따라서 만들거나 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요함은 그 안에서 모든 상태가 일어나고 가라앉는 비(非) 상태입니다.
침묵, 고요함, 알아차림은 어떤 상태가 아니며, 결코 대상으로서 전체적으로 지각될 수가 없습니다.
고요함은 그 자체로 모양이나 특성이 없는 영원한 목격자입니다.
당신이 목격자로서 더욱 깊이 휴식할 때, 모든 대상은 저마다 자연스럽게 기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아차림은 마음의 좁아지는 버릇과 동일시를 벗어나 자기의
자연스러은 비(非)상태인 현존(presence)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나는 누구인가?” 라는 간단하지만 심오한 질문은
자기 자신이 에고 – 인격의 끝없는 독재가 아니라,
대상이 없는 존재의 자유이며- 모든 상태와 대상이( 불생불멸하는 참나의 현현으로서)
그 안에서오고 가는- 근원적인 의식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 생략 ---
대다수의 사람들은 깨달음이 의식의 어떤 변형된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순전한 오해이다.
그것은 생각의 움직임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마음의 조작이나
통제에 의해 요염되지 않는 상태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깨달음의 정체이다.
조작을 통해서는 우리 본성의 이러한 진실과 만날 수가 없다.
바꾸려는 노력을 통해서는 내가 거짓 정체성, 에고 정체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넘어 설수가 없다.
자신이 맨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쉬도록 놓아둘 때,
우리는 의식으로 하여금 생각이나 느낌과의 동일시,
몸과 마음, 개성과의 동일시에서 깨어나도록 허용할 수 있다.... ----생략---
- 아디야 샨티의 참된명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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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삐카님의 댓글
부지런한 청정심님 덕에 좋은 글을 보게 되네요.
"대상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인 알아차림 그 자체로서 편안히 쉬는데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청정심님의 댓글
네 이글은 요점만 간추리느라 빠진 것이 있습니다만
아디야 샨티의 책을 읽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자연스러운 상태는 저절로 알아지는 상태라고 할수 있지요.
캄솨...~~ *^-^*
박제님의 댓글
청정심님.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한가 봅니다.
삶에서 부대끼고 깨어가는데는 법륜 스님 글이 참 좋습디다.
여여하십시오.
청정심님의 댓글
아! 네 박제님 법륜 스님 동영상은 가끔 보긴 합니다만
잘 따라하지는 못하고 있어요..언제 글이 있다면 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