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번역은 반역이라는데...
작성자 : 덕인추천수 : 0조회수 : 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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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정 때 문학활동을 해서 한 때 친일문인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 김소운씨(1907-1981), 그가 정말 비난을 받아야할 만큼 친일파였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소운씨는 韓日 양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은 지식인이었으며 글재주 또한 매우 뛰어난 문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김소운씨는 조선의 문학작품과 시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일본에 많이 소개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일본어로 번역한 유명한 시 중의 하나가 바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김상용님(1902-1950)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입니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왜 사냐건 <망향, 문장사, 1939> 세속를 초월해서 유유자적하는 무위(無爲)의 목가적 생활을 노래한 "남으로 창을 내겠소." " 전원시(田園詩)"의 백미(白眉)라고도 불리우는 김상용님의 이 시를 김소운씨는 일본어로 번역을 시도합니다. 일본어가 매우 뛰어났던 그는 첫행부터 단숨에 일사천리로 번역을 해 들어갔는데요, 그만 마지막행 "웃지요"에서 턱하니 막히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마지막 행 "웃지요" 는 이 시에서 화룡점정(畵龍点睛)이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말그대로 "笑うよ”(와라우요)、라거나 "笑いますよ”(와라이마스요)라고 번역을 하자니 원작의 느낌을 제대로 못살리는 것은 고사하고 정말 웃기는 엽기코미디를 만느는 격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다시 표현하자면 "...왜사냐건, 와하하하..."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김소운씨는 마지막 "웃지요", 이 한 마디를 놓고 몇날 며칠간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시의 문맥에 아주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일본어 표현을 찾아내니 그것이 바로 "さあね”(사아네~)였습니다. "さあね”(사아네)는 우리말로는 곧잘 "글쎄요"로 번역이 되곤 하는데요. 한국어의 "글쎄요"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정말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 본어의 "さあね”(사아네)는 질문자나 답자나 서로 뻔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직접적인 답을 회피하는 경우, 내심 "에이 뭘 다 아시면서 그러시나〜"하는 식의 뉴앙스를 풍기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고 그런 뉴앙스를 풍기면서 ”さあね”(사아네)라고 말하는 일본인들의 표정은 양쪽 입고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살풋한 미소를 짓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김상용님의 시의 마지막행 "웃지요"에 참으로 맞아 떨어지는 일본어 표현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김소운씨가 일본어로 번역한 "남으로 창을 내겠소"입니다.
南に窓を (미나미니 마도오) 金尚鎔 作 / 金 素雲訳 김상용 작/ 김소운 역 南に窓を切りませう (미나미니 마도오 도리마세으.) 畑が少し (하타케가 스코시) 鍬で掘り (쿠와데 호리) 手鍬(ホミ)で草を取りませう。 (호미데 쿠사오 도리마세으) 雲の誘いには乗りますまい (구모노 사소이니와 노리마스마이) 鳥のこゑは聴き法楽です (도리노 고웨와 기키호오라쿠데스) 唐もろこしが熟れたら (도오모로코시가 고나레타라) 食べにおいでなさい。 (다베니 오이데나사이) なぜ生きてるかつて、 (나제 이키테이루카앗테) さあね ------。 (사아네~) 朝鮮詩集(岩波文庫)より 조선시집 (이와나미 문고)에서
김 소운씨가 번역한 이 시를 읽은 일본의 한 문인은 이 시가 참 멋있다며 호평했고 특히나 마지막 행 "さあね”(사아네)의 맛이 너무도 절묘하다며 조선의 원작시를 소개해 달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원작시의 마지막행이 "웃지요"였다는 말에 감탄을 하며, "어쩜 당신은 우리 일본인들 보다 더 일본어를 더 잘아는 것 같다"며 번역자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웃지요." "さあね”(사아네) 김상용님의 시가 아니였다면 결코 하나로 만날만한 표현들이 아니었을 듯싶은데요. 김상용님의 이 "웃지요"는 이태백의 시 山中問答(산중문답)의 두번째 구절과도 상통한다고 한다고도 합니다. 問余何意棲碧山(문여하의서벽산) "무슨 뜻으로 푸른 산 속에 사느냐?"고 내게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지한) 미소지으며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다. 挑花流水杳然去(도화뉴수묘연거) 복사꽃이 물에 흘러 아득히 떠 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로다.
이태백의 한시(漢詩)도 참으로 멋진데요. 이상은 아주 오래전 제가 고등학교시절,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였습니다. 대학입시중압감에 시달리던 그 시절은 이런 좋은 시들을 봐도 좋은 줄 몰랐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은 지금 돌아보니 새삼 그시절 국어책에 있던 그 시들이 참으로 멋진 시들이었구나 하고 느끼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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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지도무난님의 댓글
하여 .. 좋은 번역은 창조라고 하기도 하지요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좋은 시 감사합니다.^^
無事人님의 댓글
멋진시로군요..!!
윤기붕님의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