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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아주머니 (루퍼트 스피라 회상 질의 문답 中에서)|

작성자 : 덕인추천수 : 0조회수 : 9,741

15-02-28 09:27

본문

 

루퍼트 스피라라는 영국의 한 도예가는 불이일원론(아드바이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회상을 열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그의 동영상을 하나 보다가 언젠가 윤기붕 선생님께서, 댓글에 "이 놈은 진짜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네"라고 무협지의 대사를 인용하셨던 것이 생각이 나서 까페 식구들과 나눈고져  녹취번역과 링크를 올립니다.  야메번역이오니 오역/의역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루퍼트 스피라와 질문자의 대화 


<<어째서 저는 아직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했지요?>>

 

여성 질문자: 정말 좌절스러운데요.  전 이런 수행을 40년 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대체로 그래도 상관없다고 여기지만 어떨 때는…지난 이틀 동안은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스피라: 지금 깨어있지 않나요?

 

여성질문자: 제가 무슨 말 하시는지 아시잖아요.  오늘 아침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식의 전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겁니다.  "아하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은 있었어요.  그래요.  그럴로 만족할 수도 있어요.  아주 극적일 필요는 없겠지요.  

 

스피라와 청중들: 하하하하

 

여성질문자: 여러 책을 통해서 극적인 깨달음에 대해서 많이 읽어봤고 전 정말 그런 것들을 원했어요.

그래요. 그 "아하!"했던 그걸로 만족할 수도 있어요.   이제는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요.   없는 거라고 덮어 둘 수 없으니까요.  그냥 저 한테 계속 일어나는 것이라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이제는 머리를 자꾸 벽에 박으면서 "깨어나자 깨어나자, 정말 이 망상으로 일어난 아상을 지겹워 없애고 싶다는." 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께서는 그냥 그 아상을 놔두고 섬기라고 하시지만, 전 정말 지쳤어요.   전 이제 나이도 먹고 피곤해졌어요.  정말 지난 40년동안 이 문제는 저의 화두였어요.   그리고 언젠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죠.  "해탈에 대한 욕구도 중요하다구요."   하지만 벽에 머리를 박는 행위는 그다지 생산적인 것은 못되겠지요.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아…그래서..흐흑흑…정말 어딘가 찾고 싶어요.. 흐흑…

 

스피라: 보살님은 아직도 뭔가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계시군요.

 

여성질문자: 불행히도 그래요…

 

스피라: 그게 문제입니다.  보살님은 여전히 깨달음이란 것이 뭔가 신기하게 일어나는 사건 쯤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좋아요... 이제 보살님은 깨달음이 그렇게 대단하고 희한한 사건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는 수긍을 하고는 계시죠?

 

여성질문자: 흑…(베시시)…네에…

 

스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뭔가 괜찮은 일이 벌어지길 원하지요.

 

여성질문자: 그래요.  뭔가는 있어야지요.  그냥 뭐라도 좀…

 

청중들: 하하하하

 

스피라: 그래요.  그냥 뭐 좀…뭐 라도 도 좀…그쵸?  보살님은 아직도 뭔가를 바라시는 거에요….

 

여성질문자: 네….

 

청중들: ㅋㅋㅋㅋㅋㅋㅋ

 

스피라: 바로 그거에요.  그게 바로 보살님의 문제입니다.  

 

여성질문자: 네 알고는 있어요.

 

스피라: 깨달음이란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대단하고 신기한 사건도 아니고 세속적인 사건도 아닙니다.  어떻게 일어나는 일도 사건도 아닙니다.  

 

여성질문자: 그래도 의식이 전환하는 거잖아요…의식 전환요.!!  의식전환야 말로 뭔가 일어나는 일이지요. 

 

스피라:  아닙니다.  사건이 아니에요.  의식전환이니 뭐니 이야기 해도 인간언어의 표현력이 불충분하기에 방편적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 뿐이지요.   비유로 예를 들어 봅시다.

보살님께서 방에서 테레비를 보시고 계십니다.   영화를 보시고 계시는 거에요.   영화에 아주 아름다운 풍광이 나타나네요.  근데 누군가가 방에 들어와서는 보살님한테 말을 합니다.  "티비 화면을 보세요."  라고…  그럼 보살님 어떻게 하실 거에요?

 

여성질문자: ?????    화면에 뭔가가 돌아가고 있으면 화면을 볼 수가 없지요.  하지만 화면에 뭔가가 없으면 화면을 보게 되는 거죠.

 

스피라:  그게 아닙니다.  테레비를 보실 때, 테레비가 꺼져있습니다.  그러면 테레비의 빈 화면을 보시는 거지요?

 

여성질문자: 네.

 

스피라:  근데 보살님이 영화를 틀었습니다.  그렇다고 티비 화면은 어디 간 것이 아니에요.  보살님은 여전히 티브이 화면을 보고 계시는 거에요.   다만 이제는 화면이 자연 풍광처럼 보일 뿐이지요.   보살님이 영화내용에 완전히 몰입되어있기 때문에 테레비 화면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 뿐이지요.   그래서 보살님은 그저 자연풍광을 보고 있다고만 믿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친구가 와서 보살님에게 뭘 보고 있냐고 물으니까 보살님은 아주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보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보살님의 친구가 그러는 거에요.  이제 티브이 화면을 보라고….. 보살님은 벌써부터 테레비화면을 계속해서 보고 있엇던 것 아닌가요?  이미 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성질문자: 자연풍광의 형태로 말이죠…

 

스피라:  네…그렇지만 여전히 똑같은 화면일 뿐이잖아요?  여전히 똑같은 곳에 있던 똑같은 화면일 뿐이지요.   영화를 틀기전에 보던 것과 같은 화면이에요.   자연풍광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같은 화면일 뿐이에요.  화면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보살님은 이 화면을 보게 되는 것이 무슨 새로운 사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대단한 사건입니까?

 

여성질문자: 그 비유를 따르자면… 대단한 사건이 아닙니다만…

 

스피라: 스크린이 영화속에서 스크린자신의 모습을 보입니까?

 

여성질문자: 아닙니다.

 

스피라:  지금 보살님이 원하고 계신 것은 영화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인 것입니다.   보살님은 여전히 깨달음이라는 것이 영화속에서 일어날 대단한 사건…이제는 대단하기 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괜찮은 사건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영화속에서 계속 찾는 한은 아마도 화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계속 여길 겁니다.    왜냐면 보살님의 의식이 하나의 어떤 대상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영화속 자연풍광을 보면서 화면을 보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성질문자: 그 비유를 따르자면 할 게 아무 것도 없군요.

 

스피라: 그렇습니다.  화면이란 새로 일어나야할 뭔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란 뭔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예전에 잃어버린 뭔가를 새로 찾는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가장 근접하게 표현하자면…사실 이것도 아주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우린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흘려봐서 못 알아차리고 있었다라고 표현하면 좋겠군요.   드라마의 흥미진진함에 휩쓸려서 화면을 보고 있다는 것을 흘려버리고 간과하고 있었던 것 뿐입니다.  

이 몸과 마음과 세상이라는 아주 극도로 흥미진진한 영화에 정신이 팔려서 우리의 실상인 화면을 마치 볼 수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여기를 떠나서 여러 힌두교사원들과 스승들을 찾아서 먼 곳으로 떠나야만 할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 테레비 화면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살님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영화속에서 즉 보살님의 몸과 생각으로  뭔가 특별한 체험, 아 이게 바로 의식전환이구나  이게 바로 특별한 사건이구나 이제 드디어 장벽을 넘어 피안에 다다랐구나 하고 느끼고 생각할 그런 체험인 것인데…사실 깨달음은 보살님이 장벽을 넘어서 다다라야할 뭔가가 아닌 것이지요.

깨달음이란  영화를 보면서 화면을 인식하는 그 순간과 비슷한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하! 나는 계속해서 화면을 보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입니다.  나는 사실 한번도 화면보는 것을 멈춘적이 없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단지 화면속 영화나 드라마에 정신이 팔렸었기에 화면이 없었던 것처럼 착각했던 것 뿐입니다.  그레서 화면이 없었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찾아서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여성질문자: 그러니까 비유를 따르자면 제 자신이 항상 그 화면이었다는 거군요.  

 

스피라: 그렇습니다.  보살님은 그 어느 한 순간, 한 찰나도 그 알아차림으로 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무한하고 영원한 그 알아차림 말입니다.   보살님은 그것이 아닌 적이 한 순간도 없는 거에요. 

 

여성질문자: 사실 점점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요…이 망상으로 지은 아상이란 것이 녹아서 사라져 버리면…아 드디어 사라졌구나..하고 느낄 텐데..

 

스피라: 왜 그게 사라져 버리길 원하시나요?

 

여성질문자: 너무도 비참하니까요.

 

스피라: 보살님의 지금 생각을 우리가 말했던 비유로 말하자면 지금 보살님이 영화를 보고 있는 데 그 중에 아주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지요.  그런데 그 등장인물중에 한 명을 찍어서는, 아... 난 저 여자가 마음에 안들어, 저 여자가 영화속에서 사라지기 전에는 화면을 볼 수 없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청중들: ㅋㅋㅋㅋㅋㅋ

 

스피라: 그 여자가 사라지기 전에는 화면을 볼 수 없어 라고 보살님은 말하고 계신 거에요.

 

여성질문자:  선생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셨듯이 그 여자(아상)을 위해 쏟았던 에너지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군요.

 

스피라:  그 여인(보살님의 아상)이 누구의 문제 거리입니까?  화면의 입장에서 그 여자등장인물이 문제거리가 될까요?   그 여인은 아마도 영화속의 다른 등장인물과 문제가 있겠지요. 

 

여성질문자: 네 맞아요.  후후…

 

스피라와 청중들: ㅎㅎㅎ

 

여성질문자: 사실 그녀 자신하고도 문제가 좀 있구요.  ㅎㅎㅎ

 

스피라: 하지만 그녀는 화면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될 게 하나도 없어요.  사실 "알아차림" 이란 문제도 없고 문제를 느끼지도 않아요.   왜 일까요?  왜냐면 어떤 상황이 문제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장애와 저항을 만나야 하거든요.  "난 이거 싫어"라고 하는 것 말에요.  그런 마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지요.   하지만 "알아차림"이란  텅 비어 있어서 일어나는 모든 현실 경험에 대해서 "난 이게 싫어"라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런 문제거리가 없는 것입니다.   

난 망상으로 짓는 내 아상이 싫어라고 하는 마음을 일으킬 이유가 없는 겁니다.  아상을 싫다고 하는 나 역시 그 아상의 일부입니다.  결국 자꾸 아상을 없애려 하면서 거꾸로 그 아상을 영구적으로 지속시키게 되는 겁니다. 

 

여성질문자: 아 그렇군요.   맞아요.

 

스피라: 별도의 내가 내 아상을 지우려하고 그래서 깨달음을 얻으려 하고 그러면 아상이 다시 생기고 그러면서 계속 악순화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치고 절망하게 되는 것이지요.  보살님은 결국 끝없이 헛된 삽질을 하는 것입니다.  아상을 지우려 함으로 인해서 아상을 존속시키는 상황말입니다.   그저 망상을 지울 수 없다는 상황을 깨끗하게 바라만 보십시오.

 

여성질문자: 그래도 선생님, 제가 그걸 알기는 아는데요….

 

스피라: 아닙니다.  보살님이 진짜 그걸 제대로 알고 바라본다면요.  그 삽질은 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뭐라고 하면 좋나..그래요!….보살님, 화면속의 풍광을 진짜로 없애려면 뭘해야할까요?  사실 보살님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면, 화면속의 풍광은 환상이지 거기에 진짜 있는 실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없앨 수 없는 거에요.   그럼 망상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할 까요?  그저 그게 망상이란 걸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 망상을 없애려 하는데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그거 완전 인생낭비하는 삽질입니다.  

 

여성질문자: 망상을 제거하려는 것이 망상으로 보인다는 그런 말인가요? 그렇지만  저는 ...

 

스피라:  보살님이 스스로를  보고 알아차리는 것은 보살님의 별개의 유한한 아상이 아닙니다.    보살님이 보살님의 경험을 알아차리는  존재라는 것은 자명하신가요?  네 그러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보살님의 의식을  알아차리는 그곳으로 돌려 보세요.   자 어디로 가시나요?

 

여성질문자: 아무데도 안 가는 데요.

 

스피라:  그곳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나요?  어느 방향인가요?  자 방향도 없지요?  그럼 어떻게 그 개별적인 아상을 한정짓고 별개로 만들 수 있나요?  찾을 수 있는 대상도 아닌데요.   보살님은 이 사실을 보살님의 경험을 통해서 답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진실이지요.    보살님이 스스로에 대한 알아차림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을 찾기 위해 어디를 가야하는 지도 모른다면 어떻게 그것을 한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또 어떻게 그게 별개의 존재이겠습니까?  오로지 대상적인 물건만 한정지을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어떤 대상이 아닌 것이지요.   보살님은 그게 뭔지 모르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바로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그 속에 있는 겁니다.    보살님은 제 질문에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한다고 해서 보살님이 책을 읽어서 이해를 한다는 것이 아니구요.   바로 보살님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은 한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보살님의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바탕으로 살아 가십시오.  바로 그 자리에 서십시오.   그것, 그 알아차림은 항상 두루 깨어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미래에 알아차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알아차림은 이미 모든 경험을 비추고 모든 경험을 알게 하는 빛자체 입니다.    알아차림은 깨달을 수 없어요.  도데체 무엇을 어떻게 깨닫겠습니가?  그 자체로 이미 빛인데…모든 경험을 알아차리게 하는 빛 말이에요. 

 

여성질문자: 깨달음의 정의 중의 하나가  스스로 알아차린다고 하던데…

 

스피라: 지금은 알아차리고 있나요?  그래요?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지요?

 

여성질문자: 스스로 자명합니다.  

 

스피라: 그럼 누구에게 스스로 자명합니까?

 

여성질문자: 그냥 스스로에게요.

 

스피라: 바로 거기 있는 것입니다.  알아차리고 깨닫는 것은 스스로 알아차리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거 뿐이에요.    그것 이상 아무 것도 없어요.  (청중: ㅋㅋㅋㅋ) 바로 보살님 스스로 그렇게 알고 있잖아요.  깨달음이란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것이라고말이지요.  그리고 제가 보살님에게 질문드렸지요.  알아차리고 있냐고요.  그리고 보살님은 즉각적인 경험으로 답했잖아요.  알아차리고 있다고요… 달리 말하자면 내가 알아차렸다고 하면 내가 그 알아차림이지요.  그렇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알아차린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깨달음이란 것은 사실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잘 알려진 경험을 일컷는 근사한 이름일 뿐이에요.  지구상의 모든 인구가 다 갖고 있는 게 그 경험인데 말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생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많은 경우 잃어버린 것 처럼 느끼는 것 뿐이에요.  그 결과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평화와 행복감 역시 잃어버렸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망상으로 생겨난 아상이 그 잃었다고 생각하는 평화와 행복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평화와 행복은 그런 곳에 있지 않지요.  그럼 어디 있을까요? 그저 단순히 우리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 안에 있습니다.  알아차림이란 알아차림이 스스로를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바로 보살님의 가장 근원적인 경험 그 자체에요.  그것은 뭔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지금 잃어버려서 다시 찾아야할 것도 아닙니다.   가장 거칠게 표현하자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다…무심코 흘려버리고 있었다 쯤으로 말할 수 있겠네요.  보살님은  몸과 마음과 세상이라고 하는 영화에 도취되어서 테레비화면 자체를 그냥 간과하고 흘려 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살님이 할 것이란 그저 몸과 마음이 짓는대로 내버려 두고 대상에게 국집되게 치우쳤던 생각의 촛점을 늦추고 그 의식을 편안하게 자기 본연/근원의 모습으로 자기 스스로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것 뿐입니다.  생각을 없애려 하지 마시고 그저 거기에 집중되는 것을 늦춰보세요.   몸과 생각과 세상이 조건지어진 속에서 어떻게 되어돌아가건 그저 흘러가는대로 놔 두세요/

 

여성질문자:  더 바라보는 자세로 있으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은데요.

 

스피라: 알아차림으로 바라보라는 말인데...

 

여성질문자: 그 경험들을 알아차림이 바라보는 건가요?

 

스피라: 그것에 대해 말씀드리려던 참인데요..   제가 그저 알아차림으로 있으라고 말씀드리면   그것은 마치 지금은 알아차림으로 있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미래에는 알아차림으로 있으라고 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것은 우리가 개채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는 방편적인 표현일 뿐이지요.   사실 그것조차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다만 처한 문맥에 따라서 그렇게 말을 해 주기도 하는 것이지요.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지금 현재 알아차림으로 있으라는 겁니다.  보살님은 이미 알아차림상태입니다.   보살님은 그 어느 한 순간도 영원하고 무한한 그 알아차림이 아닌 적이 없어요.   그 사실을 바로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알아차림으로 있으라는 것이죠. 

 

여성질문자: 네, 무슨 이야긴지 알 건 같습니다.  

 

스피라: 보살님은 그 알아차림 외에 다른 것인 적이 없어요.  그 사실을 알아차리라는 겁니다.   본인이 생각과 느낌의 집합체라고 착각하는 대신에 말이에요.   아! 나는 이 알아차림이구나!  이 흘러다니는 생각과 느낌의 집합체가 아니구나, 난 흘러다니지 않고 그저 늘 여기 있을 뿐이구나.    보살님께는 깨달음 같은 것은 그저 잊어버리시라고 권해 드리고 십네요.

 

여성질문자: 그건 불가능 할 것 같은데요.  

 

스피라: 제가 보살님께 깨달음에 대해서 잊으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보살님이 깨달음을 뭔가 일어나야 될 사건 쯤으로 여기는 그런 성향을 갖고 계서서 그런 겁니다.    

 

여성질문자: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그 책들 읽는 것을 그만 둬야 겠네요.  위험한 책들이에요…

 

스피라: 더 이상 책 같은 것 읽을 필요 없습니다.  보살님이 스스로에게 물을 것은….보살님의 현재 경험 속에 항상 있는 그것을 찾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저 그것과 함께 하세요.  일어나는 모든 경험을 바라보기만 하게요.  항상 거기있을 뿐이에요.  그게 바로 영화속에서 스크린을 찾는 겁니다.  사실 찾거나 구할 필요도 없어요.  그게 스스로 얼굴을 바라보고 있답니다.    현재의 경험 속에 있는 것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뿐입니다.   그 알아차림이 경험들 속을 관통하는 겁니다. 그것과 함께 하세요.   그 알아차림이 뒷전에서 전면으로 나오도록 놔두세요. 

 

여성질문자: 네 점점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말슴하시는 것을 알겠습니다....오케이 선생님...

..

 

 

 

 

댓글목록

지도무난님의 댓글




'다만 이제는 화면이 자연 풍광처럼 보일 뿐이지요...."

지도무난님의 댓글



번역수고 하였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길고 긴 대화를 이렇게 번역하시고...
노고가 많았습니다.
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덕을 봅니다.^^

덕인님의 댓글




노고랄 것도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올려주시는 법문과 글들,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