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마의장

야단법석

참나가 眞善美 ?

작성자 : 덕인추천수 : 0조회수 : 3,314

15-09-07 07:48

본문

 

요즘, 인터넷을 통해서 두루 도를 전파하는 어느 도인선생님은 명상을 통해 참나를 체험하고 사단점검과 육바라밀을 통해 에고의 습기를 닦을 것을 강조한다.  동서양의 경전을 두루 섭렵한 해박한 지식을 본인의 명상수련 체험을 통해 나름 정리해서 꿰뚫은 이 선생님의 강의는 참으로 논리적이고 재미있고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아울러 높은 윤리의식의 고양을 통한 자기성찰을 강조하는 그분의 가르침은 인성교육이 땅에 떨어진 오늘날 제도권학교의 학생들이 많이 들으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유학을 전공하고 맹자의 성선설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이 선생님은 참나(眞我)가 곧 진선미(眞善美)라는 견해를 곧잘 편다.

참나는 진실되고 그래서 착하고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인데...일면 듣기 좋은 말이긴 하지만 "불이법"과는 상충이 된다는 생각에 또 다시, 필자의 분별망상이 자극이 되고 말았다.   

참나가 곧 진선미라는 그 분의 말에 딴지 한 번 걸어본다.

 

진과 선과 미는 애초 별개의 것이다.  그렇기에 진/선/미로 나누어 칭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참나로서 같은 것이라면 "진"이라는 말로 다 통하는 걸 뭣하러 굳이 진/선/미로 나누어 말하겠는가?

 

미 (아름다움)

아름다움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좋은 감정과 즐거움을 일으켜 끌리게 만드는 그 무엇이라고 정의를 한다.

그런데 이 아름다움이란 상대적인 것이지 결코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

어떤이는 김지미가 최고의 미인이라고 하는 반면 또 어떤이는 정윤희가 최고의 미인이라고 한다.  고현정은 못생긴 얼굴이라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이는 고현정이야 말로 김지미 보다 또 정윤희 보다도 예쁘다고 한다.   

이렇듯 "미, 아름다움"이란 상대적인 개념이지 절대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요즘 영화에는 폭력미학이라고 해서 사람을 칼로 찌르고 자르고 피를 흘리고 죽이는 폭력장면을 아름다움으로 보여주는 예도 있다.  순수하게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일부 영화감독들과 일부 관객들에게 이런 것은 분명 아름다움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은 분명 "선,착함"과는 별개인 것이다.   

 

선(착함)

아름다움 만큼이나 착함도 상대적인 개념인 것이다.   

쉬운 예로 안중근 의사는 조선사람과 중국사람에게는 정의롭고 착한 사람이지만 일본사람들에게는 사악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논에 농약을 치는 일을 보더라도 가을에 보다 많은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에게는 착한 일이지만 그 농약을 마시고 죽는 벌레들에게는 결코 착한일이 아닌 것이다.  도축창에서 도축을 하고 고기해체를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착한일이지만 동물보호운동가들과 채식주의자들에게는 결코 착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러하니 도데체 무엇이 착함이고 또 무엇이 악함이겠는가? 

 

진(참됨)

궁극의 진리는 바로 아름다움과 추함, 착함과 악함을 초월한, 그래서 시비를 떠난 자리인 것이다. 

 

그러하니 불이법으로 진리를 보려는 사람에게 진/선/미는 참나로서 같은 것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렇게 논리를 편다고 해서 착하게 살고 아름답게 살지 말라는 말로 오해하시면 또 곤란하다.  그저 자신에게 닥치는 인연을 순순히 수용하고 그 자리에서 나름대로 즐겁게 착하게 아름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야 말로 착하고 아름다운 것이니 모두 이래야만 한다라고 한 생각에 집착하는 일만 피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사람을 반동으로 몰아서 시베라아 수용소에서 가두고 고문하고 죽게 만들었던 스탈린은 과거 수도승이 출신이 었고, 수많은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어 참혹하게 살상한 히틀러는 채식주의를 엄격하게 따르는 바른 생활 사나이였다고 한다.  이들의 문제는 너무 옳고, 너무 바르고, 너무 착함에 치우쳐 자신의 그 생각으로 세상을 잣대질하고 바꾸려 했다는 것이다.  스탈린도 히틀러도 결코 자신이 악하고 추한 짓을 한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웅대한 정치사업이야 말로 세상을 착하고 아름답게 바꾼다고 굳게 믿었다는 것이다.   

 

시비를 떠나는 것은 오히려 시비를 정확히 분별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 무엇이 시비를 정확히 보는 것일까?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옳고 좋은 일이 때와 장소에 따라 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르고 나쁜일도 될 수 있음을 정확히 통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댓글목록

김창석(윈드)님의 댓글




그렇군요^^
글 감사합니다_()_

윤기붕 님의 댓글




좋은 말씀입니다.*^^*

나우인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

無事人님의 댓글




올려주신 글 늘 감사히 봅니다.

지월 님의 댓글




님의 진실이란 방편의 글귀에 그냥 또 다른 망상이 지나가고있네요....

덕인 님의 댓글




^_^;; 입 열면 다 허물이지요...댓글 감사합니다.

참나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정확한 통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