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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

(단편소설) 사랑의 약속

작성자 : 덕인추천수 : 0조회수 : 6,171

15-04-13 12:09

본문

 

한 20년 전쯤 읽었던 단편소설인데...다시 봐도 재미있네요. ^_^  작가들 참 이야기 맛깔스럽게 지어내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약속


지은이; 술라미스 이쉬-키쇼르 (Sulamith Ish-Kishor)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 안내데스크 위에 걸려있는 시계가 6시 6분전을 가리켰다.  키가 큰 육군장교 한 명이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들고는 정확한 시간을 보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심장이 쿵쾅대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제 6분만 있으면 지난 18개월간 그의 인생에 그토록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던 그 여인을 만날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아직 본 적이 없지만 그녀의 글들은 그에게 한결같은 버팀목이었었다.  

 

그는 역무원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서있는 사람들의 바로 건너편 안내데스크에 가능한 바싹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블랜드포드 중위는  최악의 전투가 벌어졌던 그 날 밤이 떠올랐다.  그 때 그의 전투기는 일본군 제로전투기 무리의 한가운데 갇혔 있었다.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적군 조종사들의 얼굴이 보였었다.  

 

그가 보냈던 편지들 중 한 장에서 그는 종종 공포를 느낀다고 그녀에게 털어놨었다.  그리고 그 전투가 있기 며칠 전에 그는 그녀의 답장을 받았었다.   "당연히 공포를 느끼는 것입니다.  모든 용감한 남자들이 다 그래요.  성경의 다윗왕이 공포를 몰랐을까요? 그때문에 다윗왕은 시편 23절을 쓴 거에요.  다음에 만약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으면, 다음 글을 낭송하는 제 목소리를 떠올리시길 바래요. '그렇다네. 내 비록 죽음의 그림자 드리워진 계곡 속을 걸을지라도, 나는 어떤 사악함도 두렵지 않다네. 바로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기에…' 그리고 그는 바로 그 말을 떠올렸었다.  상상의 그녀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그의 힘과 기술을 새로이 북돋와주었던 것이다. 

 

이제 곧 그녀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6시 4분전.  한 소녀가 그를 가까이 지나쳤다.  블랜드포드중위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꽃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둘이서 약속했던 작은 장미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이 여자아이는 겨우 18세 정도다.  홀리스 메이넬은 자기 나이가 서른살이라고 말했었다.  "그게 뭐 어때서요?" 그는 답장에 썼었다.  "저는 서른두살입니다."  사실 그는 스물아홉이다.  

 

그의 생각은 그 책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마도 플로리다 훈련소로 보내진 수백권의 육군도서관책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뽑아서 그의 손에 쥐어주셨을 그 책이 떠올랐다.  책의 제목은 "인간의 굴레"였었다.  그리고 그책에는 내내 여자글씨로 메모들이 적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책에다 끄적이는 것을 싫어했었다.  하지만 그 책에 적힌 말들은 전혀 달랐다.  그는 한 여성이 남자의 마음을 그토록 곱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책장의 대출자 목록에 적혀있었다.  홀리스 메이넬.  그는 뉴욕시 전화번호부를 통해서 그녀의 주소를 알아내었다.  그는 편지를 썼고, 그녀는 답장을 주었다.  바로 다음날 그는 전장으로 보내졌지만 그들은 편지를 계속 주고 받았었다.  

 

13개월간 그녀는 성심껏 답장을 주었다.  그의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답장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또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진을 보내달라는 그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사유를 달았다.  "만약 저에 대한 당신의 감정이 실제가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생겼든 상관 없는 것이잖아요. 제가 미인이라고 해 보세요.  그러면 저는 당신이 그저 제 외모에만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항상 사로잡히게 될 거에요.  또 제가 그저 평험한 외모라고 해 보세요. (사실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시겠지만) 그럼 저는 또 당신이 그저 외롭고 친구가 없어서 편지를 쓰는 것 뿐이라는 생각때문에 두려울 거에요.  안되요.  제 사진은 묻지 말아 주세요.  뉴욕에 오시면 저를 만나게 되실 거에요.  그리고 그 때 당신 스스로 결정을 하도록 하세요. 

 

6시 1분전.  블래드포드 중위의 심장은 그의 비행기 엔진보다 더 크게 쿵광대었다.  한 젊은 여성이 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녀의 몸매는 길고 날씬했다.  그녀의 금발머리는 섬세하게 생긴 귀의 뒤쪽으로 물결지으며 넘겨져있었다. 그녀의 눈은 꽃처럼 파란 색이었고, 그녀의 입술과 턱은 부드러우면서도 야무져 보였다.  밝은 연두색 정장차림의 그녀는 마치 봄날이 살아나오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장미꽃을 달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완전히 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움직이자 그녀의 입가에는 나직히 유혹하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  

 

저랑 같은 방향인가요, 군이아저씨?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스스로를 주체 못하고 그는 그녀에게 한 발 더 다가 서고 말았다.  그러자 홀리스 메이넬이 나타났다. 

 

홀리스 메이넬은 그 젊은 여자의 바로 뒤에 서있었다.  나이가 마흔은 충분이 넘은 여성이었다.  그녀의 흰머리결은 닳아빠진 모자아래 눌려 있었다.  몸매는 뚱뚱했고 발목이 굵고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구겨진 코트위에 장미를 달고 있었다.  연두색 정장을 입은 젊은 여자는 금방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블래드포드는 마치 자신이 두쪽으로 갈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젊은 여자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진심어린 동반자로서 그의 버팀목이 되어준 영혼을 지닌 그녀에 대한 기다림이 너무도 깊었었다. 그리고 그녀가 바록 앞에 서있는 것이다.  그녀의 하얗고 통통한 얼굴은 젊잖으면서도 분별력과 양식이 있어 보였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보인다.  그녀의 잿빛 눈은 따뜻하고 다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블래드포드 중위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은 작고 닳아버린 파란색 가죽표지의 "인간의 굴레"를 집어들었다, 자신을 그녀에게 알리는 징표였던 것이다.  이 감정이 사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뭔가 소중하고, 그 뭔가 사랑보다 더 귀한 우정일 것이다.  그가 감사해 왔고 또 감사해야할 우정말이다. 

 

그는 넓은 어깨를 받듯이 펴고 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그 책을 그녀에게 건냈다.  말을 건네는 동안 실망의 씁쓸함에 충격을 느꼈지만 말이다.  

 

제가 존 블래드포드 중위입니다. 그리고 그쪽은 메이넬 양이시죠?  만나게 되서 반갑습니다.  저…저녁식사같이 하실까요? 

 

그녀의 얼굴이 웃음을 참으면서 밝아졌다.  "이보게 젊은이, 대체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구먼." 그녀가 말했다.  "아까 그 연두색 정장한 색시 있지? 방금 전에 여기 있었던 색시 말이우, 그 색시가 나보고 이 코트에 장미를 달아달라고 부탁을 하더구먼.  그리고 젊은이가 나한테 같이 가자고 말을 걸어오면, 자기는 저 길건너편 큰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달라고 하더군.  색시가 그러는데 이게 무슨 테스트 같은 거라며? 나도 지금 아들 둘이 군에 가 있다우 그래서 젊은이 한테 좋은일 하느게 싫지는 않았다우." 

(*)

 

 

댓글목록

idlesky님의 댓글




재미나요~^^

덕인님의 댓글




^_^ 그 짧은 꽁트에 마지막 반전이 재미있더군요.

idlesky 님의 댓글




덕인  네~ 저두요.

우페카님의 댓글




어디선가 보거나 들은 내용인듯하면서도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덕인님의 댓글




예 전에 어디서 보거나 들으셨을 겁니다. 이 꽁트는 변형되거나 요약된 형태로 널리 퍼져서 미국과 우리나라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각색되어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작이야기는 술라미스 이쉬-키쇼르(1896-1977)라는 유태계 미국인인 여류작가가 쓴 위의 꽁트입니다. 다음 웹페이지 주소에 가시면 영어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janice142.com/JoyPage/AppointmentWithLove.htm

우페카님의 댓글




덕인  친절하신 설명과 안내는 감사하긴한데... 제가 영어가 많이 약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