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요즘 임제록을 다시보는데,선사님 법문이 시원시원하네요.한때 유행했던 말로 자기 멋져부려!!^^
작성자 : 파공추천수 : 0조회수 : 4,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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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示衆) 1~3 중에 1. 사료간(四料揀) 중 하단 마무리부분.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마음의 작용은 형상이 없어서 시방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눈에 있을 때는 보고,
귀에 있을 때는 들으며,
코에 있을 때는 냄새를 맡고,
입에 있을 때는 말을 하며,
손에 있을 때는 잡고,
발에 있을 때는 걸어 다닌다.
본래 이 하나의 정밀하고 밝은 것[一精明. 一心]이 나누어서 우리 몸의 여섯 가지 부분과 화합하였을 뿐이다.
한마음(한법)마저 없는 줄 알면 어디서든지 해탈이다.
산승의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일체 치구심(一切馳求心)을 쉬지 못하고 저 옛사람들의 부질없는 동작과 언어와 가리키는 것들[機境]을 숭상하고 매달리기 때문이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산승의 견해를 취할 것 같으면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를 앉은자리에서 끊는다. 십지보살[十地滿心]은 마치 식객과 같다. 등각·묘각은 죄인으로서 칼을 쓰고 족쇄를 찬 것이다. 아라한과 벽지불은 뒷간의 똥오줌과 같다. 보리와 열반은 당나귀를 매는 말뚝과 같다.
어째서 이러한가? 다만 도를 배우는 이들이 3 아승지겁이 공(空)한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장애가 있는 것이다.
만약 진정한 도인(道人)이라면 마침내 이와 같지 않다. 다만 인연을 따라서 구업(舊業)을 녹인다. 자유롭게 옷을 입고 가게 되면 가고 앉게 되면 앉아서 한 생각도 불과(佛果)를 바라지 않는다. 어째서 그러한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만약 업을 지어서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부처가 오히려 생사의 큰 징조가 된다.’고 하였다.
대덕아! 시간을 아껴야 하거늘, 다만 옆길로만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선(禪)을 배우고 도(道)를 배운다고 하는구나. 이름과 글귀를 잘못 알고 부처를 구하고 조사를 구한다고 하는구나. 선지식을 찾아가서 생각으로만 헤아리는구나. 그렇게 잘못 알지 말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그대들에게 다만 일개 부모(根本)가 있다. 다시 무슨 물건을 구하는가? 그대들 스스로 돌이켜 보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연야달다(演若達多)가 제머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구하는 마음이 쉰 그 순간에 아무런 일이 없어졌다.’ 고 하였다.
대덕들이여! 평상 생활 그대로이기를 바란다면 다른 모양을 짓지 말라. 좋고 나쁜 것을 알지 못하는 머리 깎은 노예들이 있다. 그들은 문득 귀신을 보고 도깨비를 보며,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을 구분하며, 맑은 것이 좋으니, 비 오는 것이 좋으니 한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모두 빚을 지고 염라대왕 앞에 가서 뜨거운 쇳덩이를 삼킬 날이 있을 것이다. 공연히 아무 탈 없는 집안의 남녀들에게 일종의 여우와 도깨비의 정령이 붙어 있다. 마치 멀쩡한 눈을 비벼서 괴상망측하게 허공에서 헛꽃을 보는 일과 같이 되었다. 이 눈멀고 어리석은 것들아. 밥값을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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