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손오공과 부처님 손바닥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4,209
관련링크
본문
제법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이제 법회가 시작되어서 법회 준비에 신경을 쓰다보니 이곳이 좀 소홀해지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될 것이지만 간혹 잊지 않고 지금처럼 가끔 글을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올리는 글은 오늘 법회의 내용과도 연관이 있는 내용입니다.
아직도 코로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반님들께 농담처럼 말하지만,
코로나는 미생물이라 생각이 없어 신심(信心)도 불심(佛心)도 없고 도에는 더욱 관심이 없어,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믿음을 갖고 있든 똑같이 대하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절이나 교회 같은데 나가고 믿음이 강하다고 해서 공경하거나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니 늘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손오공과 부처님 손바닥
서유기(西遊記)를 보면 손오공이 신기 묘출의 재주와 신통력을 가지고 인간 세계는 물론 지하의 세계, 천상의 세계를 마음대로 주름잡으며 자신의 신통과 능력을 마구 쓰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처럼 지옥의 염라대왕도 천상의 옥황상제도 손오공한테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무소불위의 능력을 갖춘 것이 손오공이다.
그리고 삼장법사와 함께 천축으로 여행하면서 그들을 가로막는 무수한 마계들과 싸움에서도 결국에는 모두 평정하는, 그야말로 무적이요 무소불위의 손오공의 신통력과 힘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서유기이다.
그런데 그 손오공도 어쩔 수 없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삼장법사의 주문과 부처님 손바닥이다.
그중에서 삼장법사의 주문이 통하는 것은 손오공 머리에 쓰인 고리 모양의 틀이 있어서 가능하지 그 틀이 벗겨지면 손오공은 삼장법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손바닥은 손오공의 어떤 신통력이나 재주도 통하지 않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곳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그냥 서유기를 읽고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는 간혹 부처님의 손바닥이 왜 그럴까? 하는 의문도 품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부처님의 능력이 손오공이 도저히 미칠 수 없을 만큼 대단하기에 그렇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이 대부분 그러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서유기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세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부처님은 결코 손오공과 신통력을 겨룬 것이 아니다.
도를 닦는 사람들은 간혹 손오공과 같은 능력을 얻기를 원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도를 깨친 도인(道人)이요 높은 의식의 소유자라고 생각을 하고, 그러한 경지를 깨달음에 가까운 경지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나라의 이름 있고 영험 있다는 괜찮은 산에는 그러한 능력을 쫓아, 그것을 얻으려고 수년에서 수십 년을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도인’이라는 이름에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대입시키는 영상이 바로 그러한 모습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통렬하게 깨뜨려주는 것이 바로 부처님 손바닥이다.
부처님의 손바닥은 허공의 손바닥이다.
허공......
서유기에선 부처님께서 손바닥을 펼치신 것으로 묘사되지만, 손오공이 스스로 허공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안 것뿐이다.
그리고 손오공이 아무리 뛰고 나는 능력이 있어도 허공이 없으면 제가 어디에서 그러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허공과 같은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세계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부처님의 신통력이 아니고....
이 우주 삼라만상에 아무리 크고 웅장하고 대단한 것이라 하더라도 허공을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우주를 움직이고 바다를 가르고 빛과 같이 달린다고 하더라도 허공을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그런 존재는 이 우주에는 절대로 없다.
왜냐하면 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은 이 우주의 법칙과 작용으로 생겨나 산다는 것이다.
이 우주의 법칙과 작용으로 생겨나고 사는 존재가 우주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주의 법칙과 작용이 사라지면서 그도 사라져버린다.
이처럼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허공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텅 비어 있는 곳이다.
텅 비어 있다면 아무것도 없는가?
모든 것이 다 있는 곳이다.
그렇지 않은가?
텅 비어 있지 않으면 그 속에 무엇이 있겠는가?
텅 비어 있기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손오공은 자신의 능력이 대단한 줄만 알았지 부처님 손바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놀이터인 줄 모르고 까불고 있을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손오공이 아니더라도 신기하고 특별하고 대단한 어떤 경지가 있고 그것이 마치 도를 깨친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그것은 부처님 손바닥 안, 즉 이 한 법의 법칙과 작용으로 흘러가는 법계다.
그것을 이 한 법의 설명에서 가끔 허공이라고 표현을 한다.
그래서 부처님, 즉 이 한 법은 그 손바닥으로 삼라만상을 다 만들어낸다. 이 한 법의 법칙과 작용은 그만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허공이 그냥 허공이 아니라,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허공이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허공이다.
그곳에서 우리가 나왔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간다.
부처님이라고 하니까 인격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인격체가 아니다.
바로 허공의 성품을 이름하여 부처님이라고 한다.
그것을 신이라고 해도 좋고, 도라고 해도 좋고, 진리라고 해도 좋고, 하느님이라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허공은 허공이기 때문에 어떤 이름도 붙일 수 있고 반대로 어떤 이름도 붙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거룩한 어떤 이름을 갖다 붙인다 해도 어떤 허물이 잡히지 않는다. 반대로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아도 또한 어떤 허물이 잡히지 않는다.
내가 손오공과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제목을 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허공을 알기 위해서 손오공 같은 신통력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고, 삼매와 같은 높은 의식의 상태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아무리 손오공 같은 신통력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또 높은 의식으로 삼매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일체만법을 품어 안는, 그래서 어떤 차별도 없고, 선도 없고 악도 없고, 옳고 그름도, 좋고 나쁨도, 귀하고 천함, 높고 낮음도 없는 이 한 법의 허공과 같은 성품을 아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처럼 깨달음은 허공의 성품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나왔고 그곳에서 나왔기에 그곳에서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고, 또 내가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듯이 허공 역시 나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허공의 성품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그래서 깨달음은
손오공과 같은 신통력을 가졌거나, 높은 의식의 삼매에 살거나,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그날 매상이 좋아서 술 한 잔 기분 좋게 마시고 옆구리에 꽁치 한 마리 꿰차고 비틀거리며 자식과 마누라가 있는 집으로 걸어가는 그 모습이나, 허공의 입장에서는 아무도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허공이요, 허공과 같은 법계요 성품이다.
만약에 그 여러 가지 모습에 차별을 둔다면 어찌 허공이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허공을 떠날 수도 없기에 허공 역시 우리를 떠날 수가 없는 것처럼, 내가 바로 허공이라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손오공의 신통력이나, 높은 의식의 삼매를 경험하는 것보다 더 뛰어난 이 한 법, 즉 진정한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그곳에서 나왔고, 또한 내가 돌아갈 곳이 바로 그곳임을 안다면 그가 바로 부처님을 본 자요. 부처가 된 자이다.
깨달음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본래 허공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허공에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처럼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 이전글 나를 사랑하는 첫걸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