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혼탁한 세상을 사는 법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131
관련링크
본문
혼탁한 세상을 사는 법.
세상은 참 혼탁하다.
아니, 사람들은 세상이 혼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원한다.
그런 바람으로 수많은 아름다운 말들을 쏟아놓고 공유하고 또 그 공유하는 삶에 스스로 길들어져,
그 많은 아름다운 말들을 서로 나누면 세상이 정말로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으며 위안을 받으려 한다.
하지만 냉혹하게 말하면
“정말 그런가?”
이다.
물론, 개중에는 가끔은 그런 맛을 보는 때와 또 그런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그런 자들의 증언에 힘입어
더욱 그 아름다운 글과 그것을 맛본 자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는
자신도 그 길을 가고 또 주위의 사람들도 이끌어 그곳을 향해 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런 곳이 있던가?
그것이 영원하던가?
나 역시 이 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 그것을 향해
지금 인생의 3분의 2이상을 찾아 헤맸다.
결국은
“없더라....”
였다.
가끔은 위안이 되는 일은 있었으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더라...’ 였다.
더욱이
모두가 무슨 뽕 주사를 맞은 듯 외치니까 따라왔을 뿐,
만나보니
‘아무도 그런 곳에 간 사람이 없더라.’
였고, 잠시 맛본 사람은 있어도
‘그런 세상에서 영원히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였다.
오히려 바닷물을 마시듯,
잠시 갈증을 가신 듯한 착각이 만들어낸 그 느낌이 더욱 갈증을 더해주듯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허망함만 고스란히 되돌아옴을 맛볼 뿐이었다.
세상을 잘 보고 냉정하게 깊이 생각해보라.
모든 것은 양변(兩邊)을 가지고 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기다리고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기다리듯
늘 이쪽과 저쪽이 함께 한다.
삶은 양변을 지니고 있기에 또한 서로 기대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불행, 아니 불행이란 말은 행복이란 말이 없으면 있을 수 없고
행복 역시 불행이란 말이 없으면 있을 수가 없다.
이처럼 삶은 서로 영향을 주기에 늘 변하고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절대적 법칙이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이 사실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욕심이 이 절대적 사실을 믿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인간은 그런 사실을 욕망으로 포장하여 외면한 채
영원한 무엇이 있다는 상상을 현실로 믿고
그 양변을 가치와 관념과 의미로 포장하여 한쪽만 취하고 반대쪽은 버리고는 영원히 그 속에 있으려 한다.
그래서 생사가 생겼다.
바라는 쪽은 생(生 : 삶)이요, 버리고 싶은 쪽은 사(死 : 죽음)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고통과 번뇌의 근원이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과 번뇌가 실제로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느 한쪽만 영원히 있다고 착각하고 그것에 집착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으려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히 가지려 하고
실제로 있는 것을 싫다고 보지 않으려 하고
그것으로 도망칠 수 없으면서도 도망치려고 하고
없앨 수 없는데 없애려 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세상은 절대로 우리를 간섭하거나 구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시비하면서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하며
스스로 자기 생각에 구속된 것이다.
마치 바람이 부는 가운데 장대를 세워놓고는 장대가 흔들린다고 바람을 탓하는 것과 같다.
삶은 바람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한 생각 바꾸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양쪽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그것은 생사가 아닌 양쪽 다 그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양변이 된다.
그것이 중도이다.
양쪽의 가운데인 중도가 아니라,
이쪽도 중도 저쪽도 중도로 말이다.
즉 오르막도 중도요, 내리막도 중도디/
이런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혼탁한 것이 아니라, 변화로 보이고 모든 것이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지고 늘 담담하고 고요하여 정말로 영원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
그리고 이는 세속에서 말하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속에서 말하는 오르막과 내리만근 이 한 법의 인연으로 생겨난 그런 상태를 각자의 입맛에서 짜다 달다는 식으로 이름을 붙여놓은 것임을 알고, 더 이상 그런 분별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말한 유명한 구절이 있지 않은가?
"죽으려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고통을 던지고 행복을 얻으려 하면
오히려 할수록 얻지 못한 고통과 그것을 바라는 애타는 목마름과 싫은 것을 버리려는 것에 맞서는 고통만 끊임없이 일어날 뿐이다.
이 세상의 흐름은 인연일 뿐 인간의 바람대로 가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와 고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모든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늘 담담하고 고요하다.
그럴 때 그렇게 없애고 싶은 고통과 번뇌가 씻은 듯 사라질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이요 행복의 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전에서는 늘 패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은 이런 말이 지식으로는 저장되어 있지만, 실전에서는 어리석게도 그 지식을 쓰기도 전에 욕심으로 만든 칼이 튀어나와 세상과 싸우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데
아무리 좋은 말들을 많이 안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떻게 실제의 삶이 되겠는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자신이 보고 싶은 쪽만 바라보지 말고 그 반대쪽의 보기 싫은 것에 대해서도 눈에서 손을 떼고 정면으로 바라보라
그리고
그냥 보지만 말고
그것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어떤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깨달은 자는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은 자이다.
심지어 자신까지 내려놓은 자이다.
마음의 한 티끌마저도 버림으로써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얻은 자이다.
그래서 인정과 받아들임은 욕심을 줄이는 아주 중요하고 유용한 방법이다.
- 다음글 양변(兩邊)
- 이전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