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연기(緣起)와 인과(因果)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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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緣起)와 인과(因果)
법계(法界 : 우주 삼라만상의 실상實相)는 연기로 이루어져 있다.
인과는 연기인 인연을 한 단면만 잘라서 인간적 관념으로 해석한 것이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생들의 생각은 전도(顚倒 : 뒤바뀜)되어 있다." 고 하는 인간의 전도된 망상(妄想)에만 존재하는 착각이요 허상이다.
법, 즉 우주의 실상은 연기요, 인간도 우주의 법칙을 떠나 살 수 없어 연기의 법칙을 떠날 수 없다.
비유하면 법에서는 생사가 없으나 이 법을 모르는 인간들에겐 생사가 있다고 믿는다.
생사가 있다고 보는 것이 인과이다. 즉 '태어난 것은 죽는다.'이다
하지만 연기에는 생사가 없다. 인과 연이 만나 과를 만들고 과가 다시 인이 되어 연을 만나서 또 과를 만들고 또 다시 과가 다른 연을 만나고... 이렇게 끝없이 이어나가는 것이 법계이다.
연기의 한 단면을 잘라서 하나의 모양으로 본다면, 즉, 인과로 보면 생겼다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서 생사가 있는 듯 하나 연기의 법으로 보면 그것은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모양일 생기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몸이 사라진다고 그것을 이루던 원소들마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주 안에 있다. 다만 변할 뿐인 것이다. 그래서 잠시도 머물지 않고, 부증불감(不增不減)하며 흘러가는 것이다.
또, 연기의 인과 연은 주와 객의 관점에서 나눈 것이어서 관점에 따라 주와 객이 바뀐다. 그래서 A와 B가 인연이 될 때, A의 입장에서는 A가 인이요 B가 연이지만, B의 관점에선 B가 인이요 A가 연이 된다. 그래서 이 법계가 어는 한 쪽에서만 바라보는 단순한 일차원의 인, 연, 과의 연기법계가 아니라, 인 연 과가 가로, 세로, 상하 등 만날 수 있는 티끌만한 가능성만 있어도 조건으로 작용하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인과 연이 서로 섞여서 과를 만들어 내고 또 그 과들이 또 그렇게 수많은 연들과 서로 섞이어서 법계를 이루니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 : 거듭되고 거듭되어 끝이 없는 법계)라고 하는 것이다.
모양만 중중무진이 아니라, 사연 또한 중중무진이니 우리는 그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조건들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세상은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더 많고 이해되지 않는 것이 훨씬 많은 것이다. 그리고 법계는 절대 평등이어서 수많은 인연 조건이 인간이 생각하는 관념적 무게가 없다. 더욱 인간이 우주의 일과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삶을 제법 살고 지혜가 좀 있는 사람은 "삶에는 정답이 없다." 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법계는 어떤 잣대도 세울 수 없어 어디서 어떻게 시비를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또한 선도 악도, 옳음도 그름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모든 것들이 관점에 따라 모두가 다 인(因)이요, 연(緣)이요, 과(果)여서, 주와 객이 없으며 또 양변이 없으므로 일체가 중도(中道)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법계를 중도연기(中道緣起)라고 하시고 그것이 참된 실상(實相)이며 진리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좁은 관점에서 연기의 한 단면만 자른 인과에서 보면 '이러니까 저렇지' 하는 옳고 그름이 있고 시비가 생기지만
법계는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이어져 가고 또 하늘을 나는 새가 날아간 자취가 없어 어떤 모양도 남기지 않는 것처럼 매 순간의 찰나의 모양은 나타나겠지만, 잠시도 머물지 않아 곧 이어지는 그 다음의 모양에 묻히면서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옳다 그르다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과는 흘러가는 법계속의 한 단면을 인간의 욕심으로 잡고 싶은 장면만 잘라낸 착각일 뿐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체가 찰나도 머물지 않아서 연기의 흐름에서 잘라내는 순간 과거가 되어 버리고, 과거는 지금 순간에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허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과는 인간의 착각하여 만든 망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금강경에서도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 하여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고 하고, 사구게에서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起心)" 이라 하여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라." 고 하는 이유가 실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백장(百丈)선사의 야호선(野狐禪)에서 "부처도 인과에 떨어지는가?" 하는 물음에 백장이 "불매인과(不昧因果 : 인과에 어둡지 않다)" 라고 한 것도 비록 찰나간의 인과의 모습이 있으나, 그것으로 머물지 않고 곧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인과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과에 속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이다.
인과는 인간들이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우주의 실상을 모르고, 몸과 생각에 갇혀서는 그것이 우주인 줄 착각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얻으려는 보상심리에서 만들어진 좁은 소견일 뿐, 아무것도 아니요. 그저 망상일 뿐이니, 인과에 속지 말고 인과라는 말에 솔깃하여 귀와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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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금싸래기님의 댓글
쌤. 감사합니다.덕분입니다.()()() 쌤과 도반님과의 탁마현장입니다. 화이팅임다,~~~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법문 감사합니다.()
포세인죤님의 댓글
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心明 님의 댓글
이 넓은 우주에
내가 지금 여기
있는데
그것은 연기에 의하여 여기 있다가
연기에 의하여 사라질 것이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일까?
법화경은
일대사인연-그야 말로 커다란 인연이라고 합니다.
佛知見을 開.示,悟,入하게 하기 위하여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佛知見은 무엇일까요?
중생지견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