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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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힘든다고 말하라.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308

15-08-09 05:36

본문

 

가끔은 힘들다고 말하라.

 

우리는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참는 사람이 되고, 늠름한 사람이 되고, 사랑이 넘쳐야만 제대로 된 사람인 줄 안다.

거기다가 이름 하여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이라야 깨달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도 가끔은, 아니 늘, 자신도 있는 그대로 봐주라.(인간은 원래 늘 부족하니까)

힘들 땐, 정말 힘들 땐, ‘나도 힘들어’라고 말하라.

우리도 싫어하는 것이 있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고

때론 마냥 참고 싶지 않을 때가 있고

가끔은 우리도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고

때론 위로만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러다가 어쩌다가 위로를 잊어버리기도 하는 그저 보통 사람이라고 말하라.

 

(왜 완전해지려고 하는가?)

 

세상의 좋은 말들은 가끔은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한다.

우리는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이다.

가끔은

울고 싶고

위로 받고 싶고

못난 내 모습을 감추지 않고 싶고 내 맘대로 하고 싶다.

 

왜 우리는 늘 그렇게 완전하고, 시들지도 않고, 실수도 하지 않는 그런 자가 되어야 하는가?

 

주위를 돌아보라.

아름다운 꽃들이 10일을 가는 꽃이 있던가?

오늘 뜬 해가 하루를 넘긴 적이 있던가?

젊을 때 연예인이 지금도 그 때의 얼굴이든가?

 

우리는 변한다.

그런데 왜 그 허깨비같은 완전이라는 것에 속아 영원히 완전회사의 직원이 되려는가?

 

우리는 사실은, 정말로 ...

세상에 나와 있는 아름답고 거룩한 말들을 감당해 낼 그런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그냥 가끔은 잘 할 때도 있고 못날 때도 있는 보통은 그냥 살아가는 그런 평범한 존재들이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말로 우리를 구속하지 말라.

가끔 그런 말에 자신을 맞추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을 볼 때 나는 마음이 아프다.

그럴 때마다 세상의 아름답고 거룩하고 맑고 향기로운 글과 말들을 다 없애버리고 싶다.

 

우리는 그냥 우리답게 살고 싶다.

 

그런데 세상의 좋은 글들은

모두가 우리를 사랑하니 보다 남을 사랑하는 게 먼저다.

우리는 늘 뒷전이다.

그러다보니 그런 말에 부응하지 못하는 우리가 한심하고 바보 같고 때론 미워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외롭다. 슬프고 위로 받고 싶다.

 

이제는 그렇다고 말하라.

가끔은 나도 힘들고 슬프고 때론 바보 같지만 그런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절대로 무쇠팔을 가진 마징가 제트가 아니다.

 

그대는 금강불괴(金剛不壞)가 아니다.

 

노자는 그랬다.

세상이 어지러워진 까닭은 교육이라는 게 생기고부터라고...

사람들이 셈(관념)을 모를 때 주고받음이 넉넉했다.

그러나 셈이라는 것이 나타나면서 그간에 주고받은 사람들이,

친구든 가족이든, 친적이든, 단골 장사든,

모두에게 의심이 일어났다.

“그 동안 내가 몰라서? 계산을 잘 못해서? 내가 속아서?”

라는 등등의 생각이 일어나면서,

믿음으로 넉넉하던 세상이 어지러워졌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시세를 탄 부자와 어묵한 가난뱅이가 생겨나고 세상인심이 박해졌다.

 

결국

아빠와 친구처럼 행복하게 지내는 아들이 효의 교범이 나오면서 나쁜 불효자가 되었다.

올바름을 얘기해도,

윗사람이 말하면 교훈이 되고,

아랫사람이 말하면 버릇없는 말이 되었다.

 

인간들이 지어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고 한다는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구속하고 힘들게 하는 지,정말....(거기서 자유롭습니까?)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규칙(윤리, 도덕, 옳음 그름, 등등)이 많다지만,

그 속에 들어 가 보면,

참으로 남이 아니라

심지어, 둘도 없는 내 친구하고도 틀어지면

그것이 싸움이 될지, 싸움이 되면 지킬 규칙들이 얼마나 많을지..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또 규칙은 규칙이니 얼마나 우리를 구속하는지 모른다.

 

오늘 말하고 싶어 하는 과정에 문제 삼는 규칙이라지만,

그 규칙은,

규칙이라고 해서 대단한 규칙도 아니고

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대중적 규칙들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 규칙이 많아지고 또

우리가 그 규칙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그런 모든 규칙들이 비록 더불어 사는 사회와 남에게서 왔다 하더라도,

그토록 자유를 바라는 사람들이

그 흐름을 대할 때는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만났을 때

한 마디 대항도 못하고 온전히 꼬리를 내리고는

겉으로는 세간의 완전함을 외치면서 따라다니는 그 비겁함....

그러면서 다음엔 당하지 않으려고 자신도 모르게 쌓는 규칙들....

 

그 사실을 정말 우리 스스로가 모른다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인지..

아예, 그 모든 개개인의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것이 규칙인지 아닌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차라리, 스스로를 누가 알겠는가하며, 사실의 모습이 보이면 마음이 나을 텐데...)

습관처럼 사전적으로 굳어진 의미를 가진 세상의 규칙을 욕하면서

거기에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고백을 한다.

 

그것이 더욱 아프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열심히 깨달음을 구한다.

 

깨달음이 무슨 대수냐?

거꾸로 깨달음이 무슨 선거냐?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어찌 깨달음으로 가려하는가?

 

차라리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힘들면

“ 에고... 죽겠네, 정말로 힘이 든다."

고 하라.

 

그것이 지금의 그대의 최선의 상태가 아니었는가?.... 

 

 

댓글목록

사랑감사님의 댓글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솔직히 삶이 참 힘듭니다. 왜 태어났나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왜 내가 태어났는지 궁금하게 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그런데 이런 내가 불성이라고 합니다. 참! 황당하네요. 이렇게 힘든 삶 자체가 불성이라고 합니다. 참말로 기가 차네요! 고맙습니다.

無事人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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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lesky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김창석(윈드)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_()_

무무님의 댓글


어차피 이것이 인간사 아니겠어요. 그래서 석가도 삶은 고해다라고 말씀하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