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마르다와 마리아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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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다와 마리아
그들이 길을 가는데,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예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주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그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 누가복음 10장 38 ~42절 -
십여 년 전에 택시기사를 할 때 대구의 어느 시장 모퉁이에서 어떤 손님을 태웠다. 나이가 한50~60 정도.. 오십이라기보다는 육십에 가까운 아줌마였다.
그때, 택시 안에는 제1 라디오 FM 음악방송의 여섯시부터 여덟시부터 하는 김미숙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음악을 틀어놓고 있던 중이었다.
이 손님께서 타시자마자 나에게
“기사님은 많이 배우신 분이네요. 음악이 참 고상합니다.”
아무 뜻 없이 그냥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있는 나로선 좀 송구스러워서, 내가
“아이고, 아주머니, 분별하지 않으면, 성스러운 것도 없고 잡스러운 것도 없는데, 뽕짝이든 클래식이든, 똑같아요.”
별 생각 없이 그냥 그런 것을 이야기 했는데, 이 손님께서 왈...
“에구.. 저 말씀하시는 것 좀 봐요, 말씀도 다르시네... ”
칭찬을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 말이 너무나 정겹고 살가워서,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 분의 말이 자신은 평생을 살면서 늘 남 앞에 서면 주눅이 들어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거의 60이 다 되어 가시니까,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 온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너무나 주눅이 들어 살다보니, 저보다 좀 나은 사람 앞에 서면, 얼굴에서 바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목이 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 그렇게 자신 없는 세월을 아무도 도와주지도 않은 그 수많은 세월을 그렇게 살아오신 것이. 그러면서 자신의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시는데, 한 번도 자신답게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이것이 나의 삶이거니 하면서 체념하고 살면서도 늘 비교된 자신의 모습, 그리고 주위에서 늘 탓하는 그 모습이 싫어서 자신 있는 모습을 세우려고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래서 자신이 생겼습니까?”
하니까, 그녀는 허허롭게 웃으면서,
“아니요.”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은 더더욱 못난 자신이더라는 것이다. 그 말에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난 잘 안다. 자신이 없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 세우려고 한다면, 세우려고 하는 만큼 그만큼 자신은 자꾸 목이 짧아진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그분에게 말했다.
“제가 다시는 목이 짧아지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테니 하시겠어요?
하니까, 이야기를 하면서 내게 믿음이 가는지 그렇겠다고 대답을 하기에 내가 말했다.
“주눅이 들거든 주눅 든 채로 사세요. 주눅이 들지 않는 모습을 지으려고 하지 말구요. 주눅이 들어있는 그 모습이 그때의 바로 아주머니의 모습이거든요. 거기서 주눅이 들지 않으려니 그 마음이 오히려 더 이상해지고 더욱 더 주눅이 들게 하거든요.”
하니까, 이 분이 대뜸 알아듣는 것이 아니겠는가?
“맞아요. 내가 남들에게 괜찮은 모습을 하려고 할수록, 더 힘들어 졌어요. 그럴수록 남 앞에 서면 더 얼굴이 빨개지고..”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아..... 참으로 그 있는 그대로를 살지 못하고 남과 비교를 하면서 그 비교의 선상에서 자신을 맞추려는 그 몸짓 속에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은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다시 내가 이야기를 하려는데 이야기 하다 보니, 그만 그 손님의 목적지를 지나와 버렸다.한참 이야기를 하시다가 그것을 눈치 채자, 갑자기 그 손님은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것에서 딱! 멈추더니,
“아이고, 택시비를 계산하고 탔는데 지나버렸으니, 어떻게 해? 모자랄 텐데.”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잘못된 자신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와, 길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했다는 자책에 너무나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모르시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고, 아닙니다. 저도 잘못했는데요 뭐, 지나왔으면 돌아가면 되고, 또 모자라도 상관없어요. 저도 잘못한 것이니까, 손님께서 늘 가시는 데로 요금을 주세요.”
하는데도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시고 계속 자신의 지갑을 뒤지고 있는 것이다.
참... 그 모습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 그분의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분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걱정 마세요. 그냥 돌아가면 되어요.”
하면서 차를 돌렸다. 차는 다시 돌려서 돌아가고 있고, 제가 안심하라고 하고 있는 대도 그 손님은 수십 년을 습관처럼 살아온 남들에게 바보 같고 모자라 보이는 자신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남에게 인정받고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그리고 실수도 하지 않는, 모든 것에서 완벽한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용서하지 못하고, 당황하여서 어쩔 줄을 모르며 습관처럼 요금을 챙기기 위해 지갑을 뒤지고 있었다.
아…….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아팠는지……. 그 때의 내의 마음은, 그분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요금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지금 이렇게 서로 이야기가 될 때에 그 손님의 길고 긴 아픔의 세월을 끝낼 수 있는 작은 단서라도 될 수 있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요금 때문에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요금을 내게 못 줄까 안타까워하는 그 아주머니가, 더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요금은 그대로 받는다고 했잖아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 말 좀 들으세요. “
하는데도, 계속 그것은 미안한 일이라고 하면서 지갑을 뒤지고 있었다. 내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아주머니, 지금 제가 아주머니께 바라는 것은 아주머니 삶의 자유와 평화밖에 없어요. 제발 좀 제 말을 들으세요. 그 몇 푼의 돈이 아주머니의 그 자유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 택시비를 못 받은 들 그게 아주머니의 마음의 평화에 비해 얼마의 가치가 있겠어요?”
그제야, 지갑을 뒤지는 것을 멈추시고는 무엇이 중요함을 아셨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주머니, 잠깐의 만남이지만, 저를 믿으신다면 제 이야기를 들으세요. 아주머니, 못났다는 것은 못나서 못났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러한 어떤 행동을 했는데, 사람들은 서로 비교해서 좋다 나쁘다 하니까 못났다는 것이 생긴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스스로 못났다고 하시지만, 그건 못난 것도 잘난 것도 아닌 그냥 그 때의 아주머니의 모습일 뿐이에요. 비교만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비교하니까 못났다고 할 뿐이잖아요? 그렇죠? 사람마다 다 다른데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어요? 또 사람마다 성장과정도 다르고, 습관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른데 같은 상황이라고 해서 어떻게 다 똑 같은 행동을 해요? 또 그렇게 하라는 법이 어디에 있어요?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지요? 하느님이? 신이? 하느님을 본 사람이 누가 있어요? 신을 본 사람이 누가 있어요? 아무도 없잖아요? 설사 본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하느님인지 신인지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 마음으로 비추어보고는 자신만의 판단만 옳다하고는 이것이 옳으니 저것이 그르니 한단 말이에요. 그 판단도 사람마다 다 틀려서 누가 옳은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남들이 못났다고 하든 말든 그냥 그때의 아주머니의 모습대로 사세요. 그리고 비교된 잘난 것을 찾지 마세요. 그러면 못났는지 잘났는지 알지도 못해요. 그러니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아주머니는 늘 착하고 완전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어요. 때로는 잘못도 하고, 때로는 바보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때론 괜찮은 일도 하기도 하잖아요? 이 세상 누구든 다 그렇게 살아요. 그러니 잘못할 수도 있고 바보 같을 수 있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세요.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의 행동을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그냥 그럴 뿐이에요. 잘났다 바보 같다 하는 것은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니에요? 비교하지 않으면, 매 순간 그냥 아주머니의 삶일 뿐이에요. 그렇죠? 그렇게 매 순간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살아가세요. 남들이 욕하면 욕하라지요 뭐? 그냥 늘 살아왔듯이 그렇게 사세요. 다만 더 잘난 모습으로 살려고 하지 마시구요. 그러면 목이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차츰 줄어 들 거예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분의 모습이 차츰 편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분의 집 앞까지 왔다. 비록 짧은 거리를 오다보니,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신 것 같았다. 자신이 살아온 과거가 바로 남들에게 바보 같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한 번도 자신답게 살아오지 못한 삶이 너무 무겁다보니, 나의 몇 마디 말에 자신을 올바르게 되돌아보게 된 것 같았다. 내리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면서 또 문을 닫으면서 꾸뻑 인사를 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보기가 좋았다. 그 모습이 앞으로는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 때만은 자신이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는 것을 이해하신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분이 그 수많은 세월을 너무나 고통 속에 살아왔기에, 그 고통을 이기려는 그 마음이 쓸데없다는 것을 이미 마음속에 알고 있기에, 나의 한마디에 그분이 모든 것을 알아들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도 그분과 헤어지고 난 뒤에도 한참이나 그분에 대한 안타까움과 또 그 분이 제 말을 알아듣고 가시는 듯한 모습에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한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었다.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들은 생각이 바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였다.
택시비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잠깐이나마 잊어버린 그 분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발 곁에서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마리아보다 예수님을 위해 많은 음식과 예수님을 모시기 위한 준비를 하는 마르다가 더 안타까워 보이는 그 예수님의 심정이 참으로 이해가 되었다.
“아……. 예수님께서 마르다 에게 하신 그 말씀이 이러한 것이었구나…….”
예수님은 절대로 귀하게 대접받고, 존경받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말로 인해서 저들이 자유롭기를 위해서 오신 것이다.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처음 양 혜왕을 만나서 하는 대화 중에, 양 혜왕이, 자신이 불교를 위해서 많은 사찰을 짓고 많은 탑을 지은 것에 대해서 공덕을 묻자, 일언지하(一言之下)에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하신 말씀이나,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해변 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보석으로 수미산을 치장한다고 해도, 사구게(四句偈) 하나 지니고 그것을 외우거나 남에게 그 게를 가르쳐 주는 공덕을 미치지 못한다고 하신 그 말씀 역시,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참 스승은 이러하다. 자신을 높이고 잘 대접하고, 보석 따위로 자신을 치장해주는 것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모르면 그에게 끊임없이 지치도록 그가 가진 것을 얻으려고 그를 괴롭히는 것,그래서, 마르다보다는 마리아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것이 바로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이다.
참된 제자는 스승의 말을 듣는 자이다. 그러고 나서 고마우면 스승을 대접하라. 물론 인간사회에서 고마움에 대해 보답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그런 인간관계로 사람사이를 더욱 견고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더욱 아름답고 살만하게 만들지만, 그런 형식에 치우쳐 스승을 대접하느라 스승이 무엇을 말하는지, 스승에게서 내가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마라. 그대가 그러면 스승은 대접하는 그대의 따뜻한 마음은 고마워하겠지만, 마음 한켠의 안타까움은 못내 버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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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청정심님의 댓글
정말 그런 스승이 계신가요? ...진정한 스승이 그립네요...갑자기 지난 날이 떠 올라서..그래도 돌아보니 모두가 여기 까지 오게한 고마운 분들이시네요.. ^^
윤기붕 님의 댓글
비밀댓글 스승은 원래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스승이란 이름만 달고 있을 뿐 스승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이 공부를 하는 예비 스승님들께 참된 스승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그리고 제자는 스승이 무엇을 전하려하는지를 분명하게 알아듣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것인가를 알고 서로 행하면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존경과 사랑은 절로 생기고 올바른 법이 전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법이 전해지는 것이 바로 전등(傳燈), 법의 등불을 전하는 것입니다.
박제님의 댓글
청정심님, 그런 스승이 이분이 아닌지요?
오늘 새벽 또 한번의 깨어남이 있었습니다. 인연이 있으면......
청정심님의 댓글
이분이 누구? ...
잘하셨습니다..대박이시네요..대박..~~^^*
박제님의 댓글
청정심 청정심님도 더 많은 인연이 이어지기를.......
박제님의 댓글
참 스승은 이러하다.
자신을 높이고 잘 대접하고, 보석 따위로 자신을 치장해주는 것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모르면 그에게 끊임없이 지치도록 그가 가진 것을 얻으려고 그를 괴롭히는 것, 그래서, 마르다보다는 마리아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것이 바로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 예, 이제 알겠습니다.
마리아가 되겠다는 생각조차 버리겠습니다.
그 생각까지 사라지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