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선지식을 믿는 것은 법을 믿는 것이다.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5,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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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서울에 있는 현정선원의 대우거사에 대한 이야기가 가끔 들려온다.
‘나이가 드셨는지 너무 독재를 하는 것 같다.’
라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현정선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같은 길을 가다보니 가끔 들려온다.
들려오는 소리가
“법회 중에 고개를 숙인다고 냅다 호통을 칩니다.”
그리고
“법회가 끝나면 줄 지어 배웅합니다.”
등등의 이야기로 마치 대우거사가 자신을 신격화(神格化)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들려온다.
오늘도 누가 그런 이야기를 전화로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선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존경이 없으면 절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오직 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우거사의 행동은 자신에게 법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버리고 법에 온 몸을 던지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끔씩 내 손에 들어오는 현정선원에서 발간하는 책자를 통해 얻은 대우거사의 법문은 정말로 법의 핵심만 이야기할 뿐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하면서 선지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것이 있고 자신의 기준과 잣대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
왜?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라는 존재가 없는데 자신의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나아가 깨달은 선지식의 생각까지도 자신의 생각의 테두리에 넣어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깨달음은 이런 것이라는 자신의 잣대를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한 자가 깨달음이 무엇인 줄 안다고 깨달음은 이렇고 저렇고, 또 깨달은 자는 이러니저러니 하는 잣대를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깨닫지 못했으면서 그런 잣대를 세울 만큼 오만하고 교만한 자라면 그는 수억 겁을 노력해도 절대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자신의 하찮은 생각하나 버리지 못하면서 무슨 법을 깨닫겠는가?
그래서 법을 공부하는 자의 모델로
내가 부처님께서 설산동자시절 법의 노래하나 들으려고 나찰에게 자신의 몸을 던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법을 구하는 자는 자신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법은 실재하는 것이고 그토록 아끼는 자신은 꿈속의 환이요, 스스로 성품이 없는 허깨비이기 때문이다.
그 허깨비를 섬기려면 법을 버리든지, 법을 깨달으려면 자신을 버려라.
백장스님이 마조스님의 입실제자로 있을 때 시주하는 사람이 마조스님에게 보시를 하면, 늘 그것을 들어 백장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지만, 백장스님은 늘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였다.
그러다 어느 날 스승 마조스님과 제자 백장스님이 길을 가고 있었는데 마침 들오리 떼가 개울에 내려 앉아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조스님은 제자 백장을 깨우치기 위해 늘 그렇듯이 마조스님이 ‘이것이 무엇이냐?’는 식으로 물었다.
“무슨 소리냐?”
그런데 그날은 백장은 혹시 들오리 떼가 날아갈까 싶어 생각으로 헤아릴 틈이 없었다. 그러니 스승의 물음에 보이는 대로 즉심으로
“들오리 소리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조용한 개울(약 천 6, 7백여 년 전이라고 생각해보라. 인구수가 적으니 개울가에 누가 있었겠는가?)에 둘이서 속삭이는 소리에 낌새를 채고 오리들이 후루룩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마조스님이 물었다.
“그 소리가 어디에 있느냐”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은 백장은 있는 그대로
"날아 가버렸습니다"
마조스님은 이때다 싶어 백장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백장은 아픔을 못 이겨 소리를 질렀다.
“으악!”
이에 마조가 말했다.
“이 소리는 무엇이냐? 그래도 날아갔다고 말할 테냐?"
그제야 백장은 시주가 보시할 때마다 스승이 그것을 들고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뜻을 알았다.
들오리 소리와 자신이 코를 비틀릴 때에 내는 소리가 둘이 아님을 언하에 깨달은 것이다.
깨달은 스승(깨닫지 못하고 문자풀이를 하면서 스승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은 늘 이 자리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마조스님도 그렇게 끊임없이 법을 보여주는데 백장은 그것을 믿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깨달음의 자리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들오리가 있는 곳에서 들오리에게 들키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자신을 잊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조스님이 물을 때 있는 그대로 대답했고, 들오리가 날아간 뒤 코를 비틀리면서 일체가 바로 법임을 깨달은 것이다.
나도 어쩌다보니 이 자리를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이자리랄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고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이것이 바로 이 자리이지, 어디에 따로 이 자리가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하고 찾아오고 묻는다.
나는 그들에게 늘 이렇게 만나고 전화하고 또 말하는 것이 법이지 따로 법이 없다고 한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전화하고 찾아오지 않느냐? 법이 없으면 어찌 찾아오겠느냐?”
그리고
“끙끙거리는 것도 법이 없으면 어찌 끙끙거리겠느냐?”
“끙끙거리는 것이 바로 당신이 법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안 믿는다.
자신이 세워놓은 깨달음이라는 상 때문에....
일체가 한 법이다. 날아간 들오리 소리나, 백장이 코 비틀려 까무러치는 소리나 다 법이다.
그렇게 선지식은 여러분 자체가 법이라고 늘 말한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리곤 여러분이 그린 그림을 자꾸 인정받으려 한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날아간 들오리요, 백장이 코 비틀린 소리다.
지금 이렇게 보고 있지 않은가?
댓글목록
삐카님의 댓글
저도 한번 가 본적 있는데 권위적라 볼 수도 있지만 제 느낌은 대중들이 불필요한 생각이나 의심을 잃으키지 않도록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읍니다
청정심님의 댓글
선지식을 믿지 않고는 법을 얻기가 어렵죠.. 왜냐면 선지식이 법이니까.
그러니 항상 생각을 조심해야할 일이죠...전도몽상에서 깨어나야~~^^*
지금님의 댓글
무더위에 건강하신지요?
차일피일 미루어오다가...며칠전부터..선생님법문을 듣고있어요.
그냥
좀 힘든일들이 있었는데... 법문을 들으면서...아주 많이 편해졌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윤기붕님의 댓글
진주도 많이 덥지요?
얼마 안 있어 끝날 더위지만 기승을 부리네요.
건강하시고 여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