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시비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수정)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841
관련링크
본문
어제 법회를 마치고 집으로 오다가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그놈과 만나 같이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택시 안에서 문득,
전부터 오늘 만난 친구와 함께 놀던 다른 친구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확인이 된 사실.^^)
아침에 일어나서 폰을 보니 반갑지만 쌩뚱맞은 친구의 이름이 통화내역에 있었다.
통화시간이 2분이 넘은 것은 분명히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블랙아웃이었다.
그런데 좀 있다.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기붕아. 반갑다. 오랜만이네. 근데 너 어제 전화했니?”
“응, 폰을 보니 전화한 것 같네, 근데 어제 술 때문에 기억이 안나.”
그러자, 기가 막히게도 이놈도
“그래, 야! 나도 어제 술 먹고 있었거든? 아침에 일어나니 폰에 네 이름이 찍혀서 전화했다. 근데 너도 기억이 안 난다고?”
“응, 대체 기억이 안나. 근데 혹시 술이 취해서 오랜만에 전화해서 실례를 하지 않은지 그게 궁금하네?”
이렇게 말하자. 이놈도 마치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지? 야! 나도 폰에 오랜만에 네 이름이 찍혔는 것을 보니 반갑기는 한데, 나이가 드니 블랙아웃이 되어 혹시 내가 실례되는 말을 하지 않았나 걱정되었거든? 야! 너도 기억 못하고 나도 기억 못하니, 마~! 이렇게 퉁 치자!”
이놈도 블랙아웃을 고백하고 면죄부를 얻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속으로
‘ㅋㅋ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하면서
“그래.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니 그렇게 퉁 치자. ㅋㅋ"
하면서 어제 일은 퉁 치고 술 깬 정신으로 오랜만에 즐겁게 안부를 주고받고 전화를 끝냈다.
전화를 끝내고
‘역시 시비를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 문제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에 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의 일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혹시 서로 싸웠을지도 모르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대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정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상관없이 가끔 이런 일이 사실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데 그것을 잊게 해주는 장치가 맨 정신에는 없다. 그리고 세상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뉴스라는 것이 더욱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이다.
그런데 어제는 우연의 통화지만, 술이라는 것이 있어(그렇다고 술에 기대지는 마세요. 그런 인연에 술이 있었다는 것일 뿐이니까요.)
어제는 어떤 일이 일어났든 다 잊어버리고, 제정신에 오히려 서로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나 하고 챙기니 즉, 어제는 지나갔고 어쨌든 오늘은 서로 시비가 없으니 아무 일이 없는 것이다.
시비의 근원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잣대의 문제다. 기억이 모여 잣대를 만들고 잣대는 다시 현재를 시비하여 시비한 기억을 만든다. 그리고는 또 다른, 좀 더 진화된 잣대를 만들고, 다시 세상을 시비하여 또 시비한 기억을 만든다. 기억과 시비는 이렇게 상부상조 한다.
그렇게 세상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늘 변해 가는데 이놈의 잣대는 늘 기억이라는 무의식에 저장되어 세상을 시비하는 종자식이 되고, 그 종자식은 늘 기억이라는 성에서 잣대를 들고 머물러, 변해가는 생각과 세상을 시비 한다.
깨달은 사람의 삶은 마치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취가 없다. 일체의 삶에 시비의 잣대가 없으니 별로 마음에 담을 일도 삶에 필요한 일 이외에 특별하게 기억할 일도 없다. 즉 일체 처에 무심하여 마음이 늘 고요하다. 그래서 쓸데없는 기억이 없다.
그래서 황벽스님의 전심법요에서 말하기를
“온종일 밥을 먹어도 한 톨의 밥알을 십은 적이 없고, 온종일 걸어 다녀도 한 뼘의 땅을 밟은 적이 없다”
고 한 것이다.
기억이 없다는 말을 듣고, 또 깨달으려면 망각증에 걸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마라.
그것도 역시 하나의 잣대가 된다. 잣대가 되면 기억에 자리 잡고 삶에 시비를 일으키고 그 시비는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시비하여 또 시비의 기억을 남긴다.
필요한 기억은 해야 하지만, 시비라는 쓸데없는 것에 마음을 일으켜 그 마음에 온종일 놀아나지 말라는 말이다.
친구와의 일은 마침 술 때문에 기억이 마비되어 일어난 일이지만,
결과는 어떤 일이 일어났든 아무 일없이 친구와 나는 여전히 친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싸웠는데 그것이 그대로 기억에 있었다면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아마 서로가 술을 탓하고 자신을 탓하고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그것을 기억에 담아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다시 시비의 근거로 삼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잣대 형성의 단계다.
오늘 글의 비유가 어떨지 모르지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모든 것은 생각이 짓고 있다는 것을 블랙아웃으로 통해서 새삼스러운 느낌이 일어 써본 것이다.
법은 그냥 법이다. 일체가 그냥 법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냥 법이요 법의 일이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의 기억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흘러가고 그것이 진실한 세상이다.
하지만 기억에 기대는 순간 시비는 마치 눈발같이 흩날린다.
번뇌가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마조스님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매 순간 인연에 즉하는 즉심(卽心)이 부처라고 했다
댓글목록
조나단님의 댓글
일체가 법입니다.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비가 와서 좋네요.
좋은 오후 되세요.^^
반야지7님의 댓글
ㅎ.ㅎ.ㅎ.
하늘이 술을 따르니 주천이요.
땅이 술을 따르니 주지라..
술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술을 사랑하니...
어찌 한잔의 술을 마다 하리오~~~~
윤기붕 님의 댓글
ㅋㅋㅋ 좋습니다~~^^
근데 한잔도 버거운 반야지님을 사람들이 술꾼으로 알까 걱정이네요.ㅋㅋ
조나단님의 댓글
참으로 멋진 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