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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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無題)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1,754

20-03-2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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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無題)

 

옛날의 어떤 장수가 활쏘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화살만큼 주인의 마음을 아는 놈은 없을 것이다.”

 

난 이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라는 것을 가끔 붓글씨를 쓰면서 느낀다.

 

사람이 활을 쏠 때에, 대부분 쏘는 자신은 늘 같다고 여긴다.

그렇게 활터를 찾아오고 활을 들고 시위를 당기면서 ‘내가 늘 쏘는 활이니까.’ 라고 한다.

 

하지만 내면으로 흐르는 마음을 과연 속일 수 있을까?

당기는 활의 주인은 같을지 몰라도(?) 과녁에 맞는 화살은 과연 늘 같다는 주인의 마음과 같을까?

 

나 역시 ‘늘 쓰는 글씨니까.’ 하며 그렇게 그런대로 글씨를 쓰지만 실제의 글씨는 늘 다르다.

그래서 그 글씨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글씨를 쓸 때의 내 마음이 보인다.

‘역시 글씨만큼 주인의 마음을 잘 아는 놈이 없다.’

고.....

 

기분이나 생각은 속여도 활을 쏘거나 글씨를 쓰는 그 때의 마음은 절대 속일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사실에 실망하지 말고 

뒤집어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같지 못하고, 

아니 늘 같을 수가 없고 어쩔 수 없이 매 순간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그렇다.

우리는 늘 잘난 놈이 아니다. 그리고 또 늘 못 난 놈도 아니다.

그냥 매 순간의 인연에 따라 변해가고 그렇게 세상을 보고 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실제 모습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 화살이 맞는 과녁을 보듯이 쓴 글씨를 보듯이 매 순간 자신을 되돌아볼 수만 있다면,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것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가질 수 있다면

 

활터의 과녁과 종이 위의 글씨는 그 다음이다.

 

정말 그것을 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시비하는 이 세상 역시 늘 그런 내 마음일 뿐, 특별히 무슨 중요한 의미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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