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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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쓴다고 행복이 오남? (너무나 단순한 우리의 삶)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556

11-10-30 04:57

본문

애쓴다고 행복이 오남? (너무나 단순한 우리의 삶)

예전에 모 방송국의 인기드라마 “파리의 연인”인가?
인기가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한번도 보지 않았었는데,
하도 떠드는(시청율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방송이고,
나 또한 김정은의 팬(정말로 팬이여유^^)이어서 보고 있었는데,
마침 김정은이가 박신양의 노래에 답하는 노래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 김정은의 노래와 그 이쁜 장면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이가 노래하고 그것을 본 박신양이가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나중에는 김정은의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고 있는데,
박신양의 전처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박신양이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전처를 보면서
전처에게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다(아마 그런 것 같았다.)
그러자 전처가 왈,

“행복하려고 애쓰며 살아.”

하니까 박신양 왈,

“행복하려고 애쓰는 그런 삶이 행복하겠어?”

하고 말한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박신양의 대답이다.

참으로 그렇다.
행복하려고 애를 쓴다고 과연 행복이 올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애를 써서 얻은 행복이 과연 영원할 것인가?

나는 택시 기사이다.
예전에는,
타고 가던 손님이 내리면,
다음 손님을 어디에서 태울까? 하는 걱정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묻어나온 탓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경제적 바탕에 대한 관심이 들어있었기 때문이고...

그런데 요즈음은,
그러한 걱정이 없다.
그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즉,
나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빈차로 손님을 태우려고 다닐 때,
예를 들어서 네거리가 나오면,
좌회전을 하면 손님이 있을까?
우회전을 하면 손님이 있을까?
아니면 직진을 하면....?

그러면서 과거에 그 네거리를 통과하면서 이리저리 가면서 손님을 태웠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어디로 가야지 손님이 있을까?
음... 이리로 가면 손님이 있을거야...
아니 저긴 손님이 없어...
등등의 잔머리를 굴렸고,
그리고는,
그 잔머리로 인하여 혹시나 그 선택이 잘못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해서 간 길에 손님이 없으면,
없는 손님을 탓하고 원망했다.

즉,
삶에 있어서 어떤 계획을 하고 결정을 내릴 때에
마치 내가 미래를 안다는 듯이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것이다.'라는
계산을 하였고,
그러한 계산속에 세상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나도 모르게 생긴 헛된 믿음 같은 것이 늘 함께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계산과 믿음하고 현실이 틀리면,
원망하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거리야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 아니니까(물론 그것도 황당한 이유로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늘 지나다니는 거리이지만,
과거에 내가 지나갔을 때에 일어난 일은 알고 있지만,
지금,
그 곳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또는 예전에 있던 건물들이 지금 있을지 없을지 
지금의 그 거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선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내가 어느 길을 가야지 손님을 태울 수 있는 지에 대한 나의 고민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를 깨달았다.

내가 모르는 일을 내가 고민하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닌가?
내가 어떤 일을 계획하던지 간에,
계획하는 것은 내가 하니까 내가 알 수 있지만,
그것의 결과는,
도무지 내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한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아닌가?
한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 내가 무슨 걱정을 한단 말인가?
내가 바라는 것이 올지,
아닌 것이 올지,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걱정을 한단 말인가?
또 걱정을 한다는 말은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데,
한치 앞도 모르는 내가 무슨 대비를 한단 말인가?
그러니,
걱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래서, 걱정이 사라졌다.

물론,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또는 저렇게 하면 저런 결과가 올 것이라는 기대는 하겠지...

그러나,
과연,
자신이 예상하는 그러한 결과가 
과연 그렇게 올 것인가 말이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래에 말이다.

그렇게 한치 앞도 모르는 우리가,
무엇을 걱정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또는 준비를 잘했다고 하면서 무엇에 의기양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가 아닌가?

물론, 
모르기 때문에 걱정한다고 말하겠지.
허나 좀더 깊이 생각해보라.

진정으로 모르면,
기대가 생길 것인가?
모른다고 하면서도,
뭔가 자신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것이라는 
자신도 모르는 묵시적인 앎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진짜로 모르면 기대도 없어야 하는데,
미래를 모른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그래도 자신은 이렇게 했으니까,
이런 결과가 올 것이라는,
즉 안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그것이 잘못될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즉,
모르니까 걱정을 하면서도 자신은 뭔가 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걱정을 하는 이유가
반쪽만 가지고 있기에 걱정을 하는 것이다.

모르면 완전히 모르든지,
알면 완전히 알든지 해야 하는데,

미래는 모른다고 하면서,
모르는 미래를 자신은 과거의 경험에서 이럴 것이라는 예측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몰라도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이렇게 하면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이쯤의 예측에 대해선 그래도 내가 알고 있지 않은가?
하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 한마음,
모르지만 예측은 알 수 있다고,
그리고 아무리 몰라도 준비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악착같이 자신이 모른다는 곳에 버리고 싶지 않는 그 마음....
그 갸륵한 마음....

그 한 마음이 자신이 그래도 미래를 준비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이다.
그 착각이 자신의 기대가 잘못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만들어내고,
바로 걱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박신양의 전처가 하는 말처럼,

“행복하려고 애를 쓰며 살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애를 쓰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미래를 알 수가 있을까?
과연 그럴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라.
늘 그렇게 기대를 하는 삶을 잠시 접어두고,
진실로 진실로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자신이 있는 것인가?

아니,
이렇게 말하면,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과거에도 그랬으니까,
지금도 그러할 것이라는 
그놈의 얄팍한 마음에 속아서,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댓가를 찾으려는 마음이,
그렇게 되어야한다는 기대를 마치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마치 미래를 안다는 듯이 떠들 것이니까,

그러한 마음을 놓고,
진실로,
그대가 어떤 노력을 하든지 간에,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100% 자신을 할 수 있는 아는 자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라.
그러한 기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실로 지혜로운 것인지를....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라는 것은 짐작을 할 수가 있다.
‘그럼 그렇다고 맥 놓고 살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글쎄다...
그것에 대한 답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그물과 같은 것)처럼 얽히고 설키어서,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없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해야 옳고 어떻게 하면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그러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모르는 자가 되면,
그러한 물음조차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길게 썼지만,

댓글목록

땅콩얼굴님의 댓글




선생님 글 읽으면 점점 인식의 전환이 오는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반가운 소식이군요.^^
날씨가 더운데 건강 조심하십시오.*^^*

유리해님의 댓글




행복하려고 애쓰는 삷....
그냥 맡길 뿐...
감사드립니다. _()_ ^^

윤기붕님의 댓글




저도 감사합니다.*^^*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조졸님의 댓글




내생각의 엉성함을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