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견성(見性)을 하려면...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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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성을 하려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은 깨달은 상태에서 세상을 보고 수행하여야 한다. 즉 자성을 보려면 자성의 상태로 나아가는 수행을 해야 된다는 말이다. 비록 깨닫지 못하여 깨달은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자성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선지식이나 경전에서 말하는 자성의 상태를 분명히 알고 이해하든 못하든 무조건 믿고 그 상태로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비록 견성을 하는 수행뿐만 아니라, 견성후 보임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수행법이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대단한 것 같으나, 사실은 아주 간단하다. 세간에서는 깨어 있음과 깨어 있지 않음, 삼매와 일상, 옳음과 그름, 정의와 불의, 거룩함과 비속함, 가치 없음과 가치 있음을 둘로 나누어 보나, 자성의 공함과 진공묘유의 분별없는 상태에서는 그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그래서 불이법인 것이다. 자성과 만법이 둘이 아닌 것도 불이법이지만, 세상의 모든 상대되는 가치를 지닌 법들이 본래부터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도 불이법이다. 즉 자성은 분별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성을 보고 깨달음을 구하면서도, 늘 깨어 있음을 구하고 깨어 있지 않음을 멀리하며, 일상을 떠나 삼매를 구하며, 옳음을 구하고 그름을 멀리하며, 정의를 구하고 불의를 멀리하며, 거룩함을 구하고 비속함을 멀리하며, 가치 있는 것을 구하고 가치 없는 것을 멀리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도를 구하고 자성을 깨달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믿는다. 자성에는 그러한 것이 없다. 그리고 자성의 발현에도 거룩하고 비속함이 없다. 즉 상대법이 없다. 다만 세간에서 인간의 생각으로 그것을 분류해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생각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구하고 자성을 보려는 자들이 한다는 수행이 모두 생각으로 지은 가치를 닦고 있으니 이는 서울로 가려는 자가 부산으로 가는 지도를 들고 옳다고 믿고 있는 것과 같아 천년을 닦아도 벽돌로 거울을 만들려는 어리석은 짓일 뿐, 도무지 소득 없는 짓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라. 자성을 보려는 자가 자성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세간의 가치만 생각하며 머릿속에 분별로만 가득차 있다면 과연 무엇으로 깨달을 수가 있겠는가? 조심하고 조심하며 궁구하고 궁구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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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현담님의 댓글
감사합니다._()_
윤기붕님의 댓글
바쁘지도 않으면서 게을러 답글이 늦었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산호초 님의 댓글
자성이 공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요...이미 자성인데 그것이 없다는 의미는 아닐테고
윤기붕님의 댓글
자성이 공하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허공과 같이 텅 비어서 모습도 분별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염현규님의 댓글
자성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세간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분별성으로 깨달를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
깨달아 보겠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좋은 성취가 있길 바랍니다.*^^*
우페카님의 댓글
깨어 있음을 구하고 깨어 있지 않음을 멀리하는것 역시 분별!
감사합니다. _()_
윤기붕님의 댓글
깨달음에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조졸님의 댓글
자성의 속성을 입이닳도록 말해도 자꾸 오해를 하니 ..아 이것참.
조나단님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