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조주의 끽다거(喫茶去)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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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주의 끽다거(喫茶去) 차를 마시거나 도를 구하는 사람치고 조주의 끽다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조주스님은 자기를 찾아온 스님에게 물었다.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래? 그럼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喫茶去)" 그리고 또 다른 스님이 오자 물었다.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 "네. 예전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럼 차나 한잔하고 가게" 듣고 있던 시자가 조주스님께 이상한 듯 물었다. "아니, 스님 이곳에 와 본 스님이나 처음 온 스님이나 어찌 똑같은 말을 하십니까?" "그러냐? 그래 그럼 자네도 한잔하게." 어떤 사람들은 이 일화에 무슨 큰 뜻이 숨어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아무런 숨은 뜻이 없다. 말 그대로다. 차 마시는데 처음 오나 몇번 오나 또 옆에서 띵하게 있는 시자나 그냥 앞에 차가 있으니 차를 한잔 마시게 한 것뿐이다. 깨달음은 별 것이 없다. 그저 일상의 있는 그대로 일 뿐, 뭔가 특별하고 거룩한 것이 없다 . 그냥 배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쉬고, 잠 오면 자고, 일 있으면 일하는 것 외에 따로 아무 것도 없다. 다만 특별하다면 어떤 특별함도 찾지 않기 때문에 분별이 없어 세상사가 가치적인 의미에서 모두 평등함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또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시자는 분별을 내어 스님들이 선지식을 찾아왔으며 뭔가 특별한 말씀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저 차나 한잔하고 가라니, 의아해서 무슨 법문이 그러냐고 물으니 조주스님은 좀은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래 차 마실 때 너도 같이 한 잔 마셔라.'하고 평상심을 보인 것이다. 우리의 참 마음은 분별이 없다. 달마조사께서 말하기를 "무심은 망상심(분별)이 없는 것이다." 라고 했으니 망상심이 없는 마음이 참 마음이다. 즉 마음없음이 마음있는 것이다.(근데 이 말은 설명이 없으면 참 무슨 말인지 모를 애매모호하고 제 나름대로 해석할 소지가 있는 말이다.) 체득이나 견성은 말 그대로 언하변오할 수 있는 것이어서 시절인연만 잘 만나면 한마디에도 깨칠 수 있다. 하지만 체득과 견성 이후가 문제다. 오랜 습기가 계속 올라오기 때문이다. 보통 체득이나 견성을 하면 처음엔 너무 신나 마치 모든 공부를 끝낸 것 같아 다른 말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체득했는데 뭘 더하느냐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분별로 인한 번뇌에 시달린다. 수십년 동안 살아온 습기가 그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사의 가르침을 얻어 깨달아도 수년 또는 수십년을 시봉하며 보임을 하는 것이다. 견성이나 체득은 이제 겨우 눈을 뜬 것 뿐이다. 그래서 이후 살아온 세월만큼 쌓인 습기인 분별을 내려놓지 않으면 공부의 끝은 커녕 오히려 안다는 상만 하나 더붙여 예전에는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분별타가 체득 후는 무늬만 바꾸어 법의 잣대를 들고 세상을 분별하며 망상을 피우는 마구니가 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분별을 내려 놓는 공부를 해야하고 이것이 사실 제대로 된 참 공부이다. 그리고 그 공부의 끝이 무분별지이다. 조주의 끽다거는 보임을 끝낸 무분별의 극치이다. 깨달았든 못 깨달았든 삶이 달라지는 것이 아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냥 이 삶 이대로일뿐 더이상 그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님을 차 한잔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은 특별한 것이 없다. 깨달음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갖추었음을 알고 또 나와 삶이 순간 순간 인연에 의해 변함을 알아 그냥 인연따라 살 뿐, 따로 그 어떤 것이 되기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여보시게들!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끽다거 喫茶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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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수냐타님의 댓글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법문입니다. 저에게는 물론, 한소식 했다고 목에 힘들어가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일침이 가해는 말씀이십니다. 분별없는 공부방식을 가벼이 보는 일부 선지식들이 떠 오릅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___________^*
유리해님의 댓글
분별하지 않고 흘려보내기~~~
감사드립니다! *^^*
윤기붕님의 댓글
평상시는 문제될 것이 없으니 흘려보낼 필요가 없지요.
늘 문제로 인식될 때만 그냥 흘려보내시면 됩니다.
건강하십시오.*^^*
이디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 팥빙수 한사발 시원하게 했습니다^^
윤기붕 님의 댓글
맛있었겠다.^^ 잘 지내지?
산호초님의 댓글
佛法在日用處
윤기붕님의 댓글
그렇습니다. 세상에 불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시천님의 댓글
이른 아침부터 컵라면 한그릇 비웠습니다 ㅋㅋ
이 곳은 조식 폐지를 주장하는 곳이지요... 니시의학을 기본으로 하는... ㅋㅋ
김에 양파 된장 넣어 싸먹고 맛 좋~~~ 습니다 ^^
든든한 하루가 될 거 같아요..
매일 좋은 날~~~!!!
ㅡ()ㅡ
윤기붕님의 댓글
좋습니다. 맛있게 먹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미루나무님의 댓글
조주 스님의 喫茶去 이야기의 참뜻을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평범해서 비범하군요.
윤기붕님의 댓글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평범보다 비범을 구하니 늘 번뇌에 시달리지요.
조사들의 말씀은 모두 평범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염현규님의 댓글
삶은 그냥 일어나는 모습 그대로 살면 되는 것 일 뿐인데,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눈치를 보고
분별을 하고
집착을 하고...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그렇지요? ^^
불급과유님의 댓글
지금 차 한잔 하고 싶네요....
나그네님의 댓글
법문을 듣다보면 불법은 너무나 평범해보여서..설마?---하는 의구심이 드는것이 사실입니다.ㅎ
각설하고 제주변에서 한소식했다는 친구들을 볼 라치면 위에서 언급하셨듯이 왜그리 거만을 떨고
기고만장하는 양태를 띠는지 저로선 이해가 불가했는데 , 바로 습이 아직까지 취착돼있는거군요
그렇다면 그런 어설픈 도인들이 넘쳐나도 이사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질못하게 되는거네요
대승불교가 보살정신을 표방한다는데 보살의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물론 일단 초견성이라도 하는게 급선무이겠지만서도요..^^
윤기붕님의 댓글
깨달음은 안다는 상이 있으면 제대로 보임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거면 차라리 견성이란 체험을 못하더라도 분별을 여읜 사람이 훨씬 자유롭고 사회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The new moon님의 댓글
보임...
그냥 분별하지 않는것만 하고살랍니다.
상을 없앤다는게 가능할는지요? 물론 분별을 없애는것도 힘들겠지만...
윤기붕님의 댓글
분별이 사라지면 상도 함께 사라집니다.*^^*
The new moon님의 댓글
아. 그렇군요
어떠한 상 이있으니 분별이 있겠군요. 에휴~
윤기붕님의 댓글
ㅎㅎ 네*^^*
우페카님의 댓글
앎과 깨달음의 중간에서 핑퐁하며 살아갑니다.
말씀처럼 어느 순간 획하고 지나가는 먼가가 예전에 있었던듯 하기도하고,
그저 아~~ 하고 머리로 알게된것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분명한것은 언젠지 모를 그 예전과 지금은 다른것같기도 합니다.
또한 마찬가지기도 하지요.
하나하나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_()_
윤기붕님의 댓글
네 모든 것이 확연하여 한톨의 의심도, 한 점의 어둠도 없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김창석(윈드)님의 댓글
깨닫지못하더라도 분별을 여읜사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늘 그것이 의문이었습니다
귀한 가르침 새기겠습니다_()_
윤기붕님의 댓글
좋은 주말 되십시오.*^**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조졸 님의 댓글
견성은 봤다는 거고 돼는게 핵심이군요.
윤기붕님의 댓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