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경허선사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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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에 조금 추가하여 올렸습니다.
만화화상은 경허선사의 스승으로 경(經) 율(律)에 해박하여 당시 조선 최고의 강백(講伯 : 강론하는 스님) 으로 명성황후와도 친분이 있던 스님이었다.
어느 날 만화화상이 설법을 하였다.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갖고, 걸음걸이는 똑바로, 문을 열고 닫을 때는 두 순으로 문닫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이 만물 가운데 영장이라하는 것은 그 규범과 질서를 알고 이를 행하고 따르기 때문이니라.
말은 반듯하고 고운 말만 가려 쓰고, 남에게 이로운 말만 골라 쓰되 아예 남을 해치거나 거슬리는 말은 삼가야 하느니라.
그리고 말을 할 때에는 쓸데없는 말은 한마디도 해서는 안되느니라. 말이란 한번 입밖으로 나가게 되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옛말에도 '입은 화의 문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이처럼 나무도 비뚤어지지 않고 곧아야만 쓸모가 있으며 그릇도 찌그러지지 않는 그릇이라야 쓸모가 있을 것이며 사람의 마음도 불량하지 않고 착하고 정직해야만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가? 불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다스리는 참 좋은 말이 아닌가?
이 설법을 듣고 있던 경허는 자신도 한마디 하겠다고 일어나 법상에 올라 말하였다.
"내 보기엔 조금 전 만화 강백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틀린 말이오.
만화 강백이 하신 말씀은 좋은 말씀이긴 하지만 옳은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소."
라고 하고는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자르려 하면 근심이 되고 오리 다리가 비록 짧지만 이으려 하면 걱정이 되노라.
바리때는 자루를 붙일 필요가 없고, 쌀 이는 조리는 새는 것이 마땅하도다. 금주 땅은 부자(附子 : 한약재)가 나고, 병주 땅에는 쇠가 좋다.
만물이 다 저마다 좋은 것이 있으니 양식이 풍족하고 연료 또한 많아 사방이 다 풍족하도다.
이와 같이 화로에 불을 부는 입부리는 뾰족하고, 글을 읽는 혀는 날름댐이니 바로 이것이 대우(大愚)의 가풍이로다.
이 세상엔 쓸모 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고 쓸모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도둑놈은 도둑놈대로 쓸모가 있고 선비는 선비대로 쓸모가 있습니다.
잘난 놈은 잘난 대로, 못난 놈은 못난대로, 좋은 놈은 좋은 놈대로 쓸모가 있는 법입니다.
삐뚤어진 나무는 삐뚤어진 대로, 찌그러진 그릇은 찌그러진 대로 반듯하며,
불량하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도 그대로 착하고 순수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온갖 만물이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쓸모없어 버릴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게으름은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휴식이고
성벽을 쌓는데도 네모지고 반듯한 돌만 있으면 튼튼한 성벽을 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작은 돌, 모난 돌, 둥근 돌, 비뚠 돌, 각 모양의 돌이 있어야 수천년 풍우에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성벽을 쌓아 올려지게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한 게송을 읊었다.
"신령스런 광명이 홀로 빛나서
하늘을 덮고 땅을 덮을지라도
오히려 이것이 뜰 아래 어리석은 놈이니
정혼을 희롱하는 다리와 손이라.
도깨비 장난을 하지 않음이 좋다.
또 일러라.
(광명을) 보았다 하는 놈이 과연 무엇인고?"
경허의 이 설법은 비공식적이지만 깨달은 후의 첫 설법이라고 한다.
만화화상의 설법은 참으로 반듯하고 누구에게나 모범적인 말이요, 본받아야 할 말로
지금도 사찰마다 많은 사람들이 법상에 앉아 가르치는 참 좋은 말과 같고,
한 때 '무소유'라는책과 말로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과 벅참을 안겨줬던 한 스님의 글과 맞닿아 있다.
언젠가 티비에서 그 한 스님에 대한 회고 프로그램을 하는데 아나운서 왈
"제가 그 스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늘 마음에 죄를 짓는 것는 것 같아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자신은 어떤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부끄럽게 하고
그 사람들은 그 스님을 기리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니 정말로 거룩하고 대단한 스님이다.
죽어서도 현재에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죄인으로 만들고는
욕은 커녕 오히려 그들로부터 추모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경허스님의 글은 참으로 한심하다.
도대체 모범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 본 받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살게 하고 자신을 인정케 하며 참 편하게 한다.
경허선사가 깨닫고 난 뒤에 6개월을 잠만 자니
만화화상이 속으로 분명히 절 살림을 위해서나 대중들을 위해서나 무슨 도움 될 일을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엎어져 잠만 자니 속에서 울화통이 터져 경허선사가 자는 곳에 가서 말했다.
"잠만 자지 말고 이제 자네도 밥값을 좀 하게."
하니, 선사는 돌아 누우며 말했다.
"게으름도 저의 일입니다."
경허스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편하게 하면서도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을 부끄러운 죄인으로 욕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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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정환 님의 댓글
그렇지 않아도 중생들은 내가 죄가 많아서,내가 못나서라는 등의 관념의 통속에 갖혀 살아가는데
그기에 올가미를 덧 씌우니... 어떻게 보면 공부도 관념의 벽을 깨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훌륭한 법문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윤기붕님의 댓글
그렇습니다.
본래면목만 알면 모든 관념이 다 떨어져서 늘 한가롭습니다.
물처럼바람처럼님의 댓글
ㅎㅎㅎ선생님 글 읽으면 재미집니다^^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퇴원 전후라 답글이 늦었습니다.
재미 있다니 좋습니다. *^^*
성주원 님의 댓글
좋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법문 감사합니다.
조나단님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