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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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612

14-11-12 12:49

본문

 

세상은 참 혼탁하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원한다.

 

그런 바람으로
수많은 아름다운 말들을 쏟아놓고
서로 공유하고 또 그 공유하는 삶에 길들여져
그 많은 아름다운 말들을 서로 나누면
세상이 정말로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고

잠시나마 위안을 받으려 한다.

 

하지만 냉혹하게 말하면
'정말 그런가?'이다.

 

물론 
게중에는 가끔은 그런 맛을 보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자들의 증언으로 
더욱
그 아름다운 글과, 그것을 맛본 자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는
스스로도 그 길을 가고 주위의 사람들도 이끌어 
그 곳을 향해 간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런 곳이 있던가?
그것이 영원하던가?

 

나도 그것을 향해
지금 인생의 4분의 3을 찾아 헤맸다.

 

결국은
없더라.... 였다.

 

가끔은 위안이 되는 일은 있었으나
그것이 영원하지 않더라... 였다.

 

더욱이
모두가 무슨 뽕 주사를 맞은 듯 외치니까
따라 왔을 뿐
만나보니
아무도 그런 곳에 간 사람이 없더라. 

잠시 맛본 사람은 있어도
그런 세상에서 영원히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오히려 바닷물을 마시듯
잠시 갈증을 가신 듯한 착각이 만들어낸 그 느낌이 
더욱 갈증을 더해주듯 
절망과 좌절속에서 허망함만 고스란히 되돌아옴을 맛볼 뿐이었다.

 

세상을 잘 보고 냉정하게 깊이 생각해보라.

모든 것은 양변을 가지고 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기다리고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기다리듯
늘 이쪽과 저쪽이 함께 한다.

 

삶은 양변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 기대어 일어난다.
그래서 불행은 행복이 없으면 있을 수 없고
행복 역시 불행 없으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삶은 서로 영향을 기에 늘 변하고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절대적 법칙이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이 사실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욕심이 이 절대적 사실을 믿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인간은 그런 사실을 욕망으로 포장하여 외면한 채
영원한 무엇이 있다는 상상을 현실로 믿고
그 양변을 가치와 관념과 의미로 포장하여 한쪽만 취하고 반대쪽은 버리고는
영원히 그 속에 있으려 한다.
그래서 생사가 생겼다.
바라는 쪽은 생(生 : 삶)이요.
버리고 싶은 쪽은 사(死 : 죽음)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고통과 번뇌의 근원이다.

 

실제로 고통과 번뇌가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느 한쪽만 영원히 있다고 착각하여 그것에 집착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으려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히 가지려 하고

실제로 있는 것을 싫다고 보지 않으려 하고

그것으로 도망칠 수 없으면서도 도망치려하고

없앨 수 없는데 없애려 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세상은 절대로 우리를 간섭하거나 구속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시비하면서 마음에 든다 안든다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바람이 부는데 장대를 세워놓고는

자신이 세워놓은 장대가 흔들린다고 바람을 탓하는 것과 같다.

삶은 바람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한 생각 바꾸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양쪽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그것은 생사가 아닌
양쪽 다 그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양변이 된다. 

그것이 중도이다.
이쪽도 중도, 저쪽도 중도로 말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혼탁한 것이 아니라,
변화로 보이고 모든 것이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지고 늘 담담하고 고요하여
정말로 영원한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

 

이순신장군이 말한 유명한 구절이 있지 않은가?

 

"죽으려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고통을 던지고 행복을 얻으려하면

오히려 할수록 얻지 못한 고통과 그것을 바라는 애타는 목마름과

싫은 것을 버리려고 그것에 맞서는 고통만 일어날뿐이다.
이 세상이 인간의 바람대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로....

 

하지만
그 변화와 고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모든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늘 담담하고 고요하다.
그럴 때에 그렇게 없애고 싶은 고통과 번뇌가 씻은 듯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자유의 길이요 행복의 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전에서는 늘 패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은 지식으로는 저장되어 있지만
실전에서는 어리석게도 그 지식을 쓰기도 전에
욕심으로 만든 칼이 튀어나와 세상과 싸우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데 
아무리 좋은 말들을 많이 안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떻게 실제의 삶이 되겠는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자신이 보고싶은 쪽만 바라보지 말고 
그 반대쪽의 보기 싫은 것에 대해서도 눈에서 손을 떼고 정면으로 바라보라  

그리고
그냥 보지만 말고 
그것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어떤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깨달은 자는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모든 욕심을 내려 놓은 자이다.
심지어 자신까지 내려놓은 자이다.

마음의 한 티끌마저도 버림으로써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얻은 자이다.

 

인정과 받아들임은 욕심을 줄이는 또 하나의 유용한 방법이다.

 

 

댓글목록

우페카님의 댓글


예전에 좌우를 놓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논쟁한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스스로는 좌도 우도 아닌 중간자적 입장을 견지하노라 자평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보는 내 시각으로는 그들이 좌또는 우로 치우쳐있어 보였습니다.
그들이 보는 나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하니 더 할말이 없더군요.

인정과 받아들임의 학습이 많이 부족한 저입니다.

윤기붕 님의 댓글


중간에서 보는 것 역시 중간이라는 데 치우쳐 있습니다.
이 자리를 깨달으면 어느 쪽에 있어도 치우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생각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중도입니다.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조졸 님의 댓글


인정과 받아들임은 욕심을 줄이는 또 하나의 유용한 방법이다.
욕심부렸군요,
생각이란 무서운 놈이요,조작에 대가임을 또다시 체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