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아는 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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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 삼라만상은 온통 법이고, 오직 한 법이기 때문에 일체의 어떤 것도 이 것을 피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대로가 바로 부처이다. 그래서 알면 안다 하고 모르면 모른다 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아는 것이요, 부처요, 법이다.
왜 자꾸 아는 자가 되려 하는가? 무엇이 알 것이 있다고 여기는가? 그대의 있는 그대로가 법인데... 모르면 모르는 그대로가 바로 법이다. 일체가 법을 여읠 수가 없어 오직 이 한 법밖에 없는데, 모르는 이나, 아는 이나, 어찌 이 법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 자신이 모르면 '아! 나는 모르니 모르는 이것이 법이야!' 하면 그만인 것을... 그것이 사실은 아는 것이다.
그러면 또 '모르는 이것이 법이야!' 하는 이것이 와 닿기를 원하는가? 매 순간 그렇게 어떤 상태를 정해놓는다면 그대는 끝없는 상태에 매여 결코 이 자리를 모를 것이다. 모르는 것은 실재이고, 지금 이 자리고,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상태는 관념이고, 과거에 정해 놓은 실체 없는 허깨비이다. 그러니 언제 이 정처없는 나그네의 길이 끝이 나겠는가?
그렇게 와 닿고 안 닿고는 생각의 일이고, 또 그런 조건의 상태 역시 생각이 짓고 있는 조작의 일일 뿐, 법은 생각이 알든 모르든 여러분을 이렇게 이 자리에 있게 하고 매 순간 여러분이 필요하면 필요한 곳에 데려다 주고, 생각도 하게하고,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는데, 왜 생각을 자꾸 따라 다니는가? 생각이 알든 모르든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것이 바로 법이고 부처이지, 이것은 알아서 얻어 지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로 이대로 법이지, 생각이 우리가 법임을 알아야 법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면 생각은 법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또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생각이 없는 자가 없으니 모두가 법보다 뛰어난 자이지 않는가? 왜 이런 모순 속에서 헤매는가? 제발 생각에 속삭이는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도 말고 그냥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법임을 알아라.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사람은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시원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누가 시원하지 않는가? 생각이 시원하지 않는 것이다. 즉심시블이라, 지금의 마음이 바로 부처이니 비록 생각이 시원하지 않으면 지금 시원하지 않는 그것, 그 마음이 바로 부처이지 왜 시원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생각이 하는 짓이다. 그런데도 아는 놈이 되고 시원해지려고 하니까, 생각을 벗어날 수가 없다.
알아야 할 내용은 알면 안다 하고, 모르면 모른다 하는 바로 그렇게 아는 놈이다. 그냥 그렇게 알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 자리, 이 법은 있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알면 아는 대로 있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는 것이 이 법과 함께 하는 것이지, 모르면 알아야 되는 것이 이 자리요 법이 아니다.
왜 자꾸 구두를 닦듯이 윤을 내려고 하는가? 그냥 발에 신고 다니면 신발이지 신발이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음에 따라 신발이고 아닌 것인가? 그리고 깨끗하고 반짝이고 멋있다고 신발이 더 편안하고 가벼운가? 물론 신발이 깨끗하고 반짝이면 남들이 볼 때 더 멋지겠지만, 그렇다고 발이 더 편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멋지지 않다고 내가 맨발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왜 신발에 다시 깨끗하니 하지 않느니 하는 관념과 의미를 붙이는가?
법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알면 아는 대로 있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으면 되는 것이지 이 모습 이대로가 법이다 하면 믿으면 되지, 왜 거기에서 그것을 아는 내가 되어야 하는가? 또 거룩하고 현묘해야 하는가? 왜 자꾸 이해하려 하는가? 왜 시원해야 하는가? 다시 말하지만, 이 자리는, 이 법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있어서 한 번이라도 이 자리가 분명해지면 자연히 그렇게 궁금하던 것들이 절로 알아진다.
이 법은 알아져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름 하여 깨달아서 아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식은 길을 가르쳐 주는 자이지 깨닫게 해주는 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깨닫는가? 알려고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고, 매 순간 자신을 받아들여라. 오직 그것밖에 없다.
제발 한 번이라도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시원하지 않으면 시원하지 않은 대로 있어보라. 시원하지 않은 자가 시원하지 않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는가? 모자란 자가 모자라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모르는 자가 모르는 것이 무엇이 잘 못 되었는가?
제발 그냥 한 번만이라도, 그것이 아무리 싫고 부정하고 싶은 끔찍한 자신의 모습일지라도 그것을 부정하고 그 모습에서 벗어나 다른 모습으로 도망가려는 생각을 따르지 말고,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그 순간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보고, 그것이 바로 그때의 부정할 수 없는 진정한 자신임을 인정해보라.
그것이 바로 백척간두 진일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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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無事人님의 댓글
_()_
김창석(윈드)님의 댓글
감사합니다_()_
자등명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idlesky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법문 감사합니다.()
무무님의 댓글
참으로 좋은 말씀
대덕성 님의 댓글
나무아미타불_()_
心明님의 댓글
참으로 시원한 소리입니다.
에고라는 것이
나라는 것이 완전히 떨어진
도인의 경지에서 하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인은
눈만 뜨면
나라는 삶을 어이할꼬?
몸부림을 치는 것이니
어찌
적천단상의 경지를 만끽할 수 있겠습니까?
윤기붕님의 댓글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게 이미 몸부림쳤으면 친 것입니다.
이미 지난 일을 다시 되살릴 필요는 없겠지요.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엔 앎이 필요 없지요.
산책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알아져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서 아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가슴깊이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