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님들의 피아졸라는 어디에...?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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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가 모두 인연으로 일어납니다. 심지어 내가 생각을 하고 팔을 들어올리고,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고, 십는 행위까지 모두가 인연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국 '나'라는 것은 인연으로 생겨나, 인연으로 보이는 존재로 존재하며, 또 인연이 다하면 사라집니다. 그 인연을 관장(?)하는 것이 바로 모든 수행자들이 잡고 있는 '이뭣고'의 실체요, 그 '이뭣고', 자성, 또는 불성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우리의 실체입니다.
(이름이야 뭐라고 붙인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일찍부터 그것이 '내가 자성이다. 불성이다.' 라고 한 적도 없으니...)
사실 알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모르면 참으로 어렵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냥 살면 '있는 그대로' 살지만, 찾으려 하면 할수록 그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체가 이것이 아님이 없어 찾으면 이것이 따로 있게 되고, 이 법은 오직 한 법인 불이법(不二法)이기 때문에, 만약 지금의 이 삶과 세상을 두고 따로 있다면 그것은 환이요, 꿈이요,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이 한 법은 모양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 등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알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드러난 만법과 만법의 현상을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찾을수록 점점 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은, 그것을 움직이는 인연과 그 인연의 법칙의 주체인 ‘이것’ 또는 이 ‘법’이 우주 삼라만상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가 삶은 주재(主宰)하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주재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자신이 중심이 되어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순간 순간의 삶을 되돌아보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좋아하거나 우쭐해하고 싫은 것이 있으면 버리고 싶어서 안달을 하지요. 즉,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대단한 존재인줄 착각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매 순간 후회를 하며 자신을 쥐어뜯으면서 말입니다...
사람이란 존재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갑니다. 시절 인연이 좋은 사람은 살아서 그것을 끝내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갑니다.
못난 모습보다는 멋진 모습을, 나쁜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을,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을, 밴댕이 같은 마음보다는 넉넉한 마음을 작은 일에 목숨을 거는 것보다는 보다 큰일을 하는 모습을 가지고 싶어서 그것을 바라면서 평생을 그렇게 자신을 되돌아보며, 시비하고 판단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보일 때마다 자신을 크든 작든 나무라거나 채찍질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라고 여기고 있는 그 생각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모습을 짓든 상관없이, 우리는 바로 신령한(?) '이 한 법'이 모양을 지어 드러낸 모습이며 인연으로 일어나는 합당한 모습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생각은 어릴 적부터 배워온, 늘 지금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라고 강요받다시피 새겨진 관념 때문에 늘 좋다 나쁘다는 시비의 분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생각조차도 그러한 시비의 인연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생각 스스로는 절대로 눈치를 못 챕니다.
그래서 생각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요 잣대로 생각하고 그 잣대로 매 순간 자신과 대상을 판단하고 그 판단 속에서 기뻐하고, 힘들어하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짜증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다시 그러한 자신을 되돌아보고는 꼭 같은 모습을 되풀이하는 것이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 하지요. 평생을 그렇게 말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놈이지요. 이 생각이란 놈이... 그런 자신이 억울하지 않나요? 우리를 위해서 이 한 법이 붙여준 생각이란 종이, 마치 주인인 것처럼 우리를 부리고 있는 것이 말입니다. 한번만, 단 한번만, 진심으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보십시오. 그 모습이 못나든 잘나든... 긍정도 부정도 하지말고 '그래 이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야!' 라고 하면서 그 순간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일어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냥 넘어가보십시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변화하고 또, 한 번도 꼭 같은 모습을 연출하지 않습니다.
이는 나쁜 일을 해 놓고, '그래. 이것이 내 모습이야!' 하면서 즐기고 그것을 옳다고 여기고 계속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그 순간 인연에 의해서 그렇게 일어났을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나쁜 모습이든 좋은 모습이든....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의 삶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흘러가지 않습니까? 또 다른 삶이 찾아오고, 우리는 그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지나가고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인연을 언제까지 잡고 늘어지며 살 것입니까?
우리의 생각은 어떤 생각이 들어오면 그것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압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것을 생각의 잣대로 그것을 판단하고, 그 결과를 리포트로 제출하고 또 반성을 하고 자신을 나무라야만 안심을 하는 놈입니다. 그리고는 좋은 일은 따라가야 하고, 나쁜 일이면 내어쳐야만 마치 자신이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처럼 여기고 안심을 하지요.
단 한 번만이라도 그러한 일을 하지 말아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늘 생각을 따르는 버릇이 있어서 처음엔 뭔가 뒷 처리를 하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느낌도 참고 그냥 넘어가보십시오.
몇 번만 그렇게 하면, 찜찜한 느낌도 사라지고, 생각이 시킨대로 하지 않아도, 인생에 아무런 금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냥... 세상의 일과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몸과 생각의 일들이 그냥 그렇게 인연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음을 바라보라구요. 아니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시비하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살아보세요.
인연을 좋게 지으려 하지도 마십시오. 세상일이란 항상 대법으로 찾아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명암과 같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비록 보이는 것은 좋게 보일지는 몰라도 반드시 그 반대가 함께 찾아오지요.
그리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사실 좌고우면(左顧右眄)과 같습니다. 좌고우면은 이리보고 저리본다는 뜻인데, 이렇게 보면 나쁜 일을 저렇게 보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일이란 자체로 보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인연이 그렇게 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생각이란 놈이 바라는 것이 있고, 집착하는 것이 있는 욕심의 눈으로 바라보니, 좋은 일과 나쁜 일로 보이는 것입니다.
전 사실은 이혼을 하고, 제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을 하기를 깨달음을 얻어서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자 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전부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십 년을 노력하고 살아왔지요, 그래도 늘 뜨뜨미지근한 물처럼 진전이 없다가, 이혼의 아픔의 고통이 동반하면서 깨달아야겠다는 마음에 푹 잠겨버린 것입니다.
향엄지한이 밭을 갈다가 나온 돌이나 기와조각을 대나무밭에 던지다가 어느 날,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히는 소리에 이 자리가 분명해졌습니다. 향엄이 한 번 만에 알았을까요? 향엄이 위산영우에게 질책을 듣고는 책에서 답을 찾다가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그동안 의지해왔던 모든 책을 불사르고, 남양혜충국사의 탑이 있던 폐사에 와서 토굴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공부를 했는데, 먹고는 살아야 하지만, 이미 폐사가 되어버린 터에 밭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요, 그러니 밭을 개간해야 하는데, 밭을 개간하는데 돌과 기와조각이 한 두 개가 나오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돌을 던졌겠습니까? 그러다가 어느 날 용케 걸린 것이지요.
저도 그렇게 수십 년을 깨달음을 구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가, 이혼이라는 아픔에 용케 걸려서 사 개월을 울고 다니다가 문득 일체가 생각이 짓고 있음을 알고는 모든 고통이 사라졌지요.
그리고는 이 도리를 모를 때에는 그렇게 그립던 전처보다는, 이혼을 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도리를 알았을까? 하는 마음에, 이제는 ‘참으로 이혼을 잘 당했다.’ 는 생각이 드니 참으로 좌고우면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이는 부도를 맞아 수십억을 말아먹고는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 있다가 문득 이 도리를 알고는, 공공연하게 “내 사업이 잘 망했어요.” 라고 말하며 다니니, 좋고 나쁨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일체의 시비와 분란이 모두 이 한 생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이 마치 자신이요, 주인인 것처럼 떠받들고 있으니 생각의 장난에 벗어날 날이 참으로 아득하지요.
그리고 인연이 맺어지는 것은 순간일지 몰라도, 그 순간에 맺어질 인연이 일어나기 위해서 적든 많든 우리의 평생의 삶이 다 원인이 됩니다. 그것을 지금 우리가 어떻게 알고 판단하고 끄집어내어서 마음에 드는 대로 고칠 것입니까? 여러분이 어느 날 꿈을 꾸다가 느낀 것조차도 어느 순간에 그대의 생각이 되어 지금의 인연을 짓는 생각의 원인 중에 하나가 되어 있는 것도 있을 것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떠도는 먼지보다 더 많은 사건들이 모여서 하나의 인연이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무슨 능력으로....?
그런데도 생각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은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버티고 있으니 그 망상이 가히 항우보다 더 기운이 셉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식하고 바보 같은 기운자랑하는 생각에 속아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끙끙거리지 말고 그냥, 매 순간 자신의 삶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바라보십시오. 그렇게 정녕 그렇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그냥 인연에 의해 일어난 하나의 이벤트로 볼 수만 있다면, 그대는 매순간 자신의 일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매이지 않고 보는 그 마음이 바로 여여한 마음입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생각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허허로운 마음이 바로 그 마음이요, 그렇게 사는 삶이
바로 '무사인(無事人 : 일 없는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인연을 짓는 삶입니다. 그래서 달마조사께서 혜가에게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 마음이 장벽 같아야 가히 도에 들어가느니라.
외식제연하고 내심무천하여 심여장벽이라야 가이입도니라 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牆壁 可以入道 ”
라고 한 것입니다.
부처님도 인과에 떨어집니다. 하지만, 인과에 어둡지 않아 매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무사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할 이야기의 주제는 (맨 아래에 있는 음악을 실행시키면서 들으시면 훨씬 글 맛이 나실 것입니다.)
누에보 탱고의 세계적인 창시자(創始者)이자 거장(巨匠)인 ‘아스토르 피아졸라’이야기입니다.
그는 1921년 아르헨티나의 아름다운 해안도시 마르 델 쁘라따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본명은 Astor Pantaleon Piazzolla.
세살 때에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서 8살 때에 아버지가 사다준 반도네온(아코디언을 개조한 악기)을 연주하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어린나이에도 각종 라디오 연주회에 출연해 반도네온으로 고전음악을 연주하였고, 열세 살이 되면서 피아졸라는 음악의 길로 나가기로 결심하는데, 옆집에 살던 피아니스트 벨라 윌다를 만나면서부터 였습니다.
벨라윌다는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라흐마니노프의 수제자였는데 피아졸라는 벨라 윌다의 피아노 솜씨에 반해 자주 집을 찾아갔고, 윌다로부터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게 됩니다. 윌다는 피아졸라에게 악보 읽는 법부터 클래식 음악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었으며 피아졸라는 나중에 윌다를 최초의 위대한 스승으로 부릅니다. 또 그 당시에 우연히 탱고가수이자 작곡가인 '가르델'의 눈에 띄어 그가 만든 영화에 신문팔이 역으로 출연해 직접 연주를 하기도 하지요. 당시 뉴욕을 휩쓸었던 재즈와 가르델의 탱고, 벨라 윌다로부터 배운 클래식 음악은 아스토르 피아졸라를 세계적인 누에보 땅고 (Nuevo Tango : 뉴 탱고)의 거장으로 만들어준 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1937년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때에 17세의 나이로 고국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그는 전통 탱고음악에 식상해하고 또, 반도네온과 같은 악기를 전통 클래식 악기에 비해 수준이 낮은 것으로 생각하고는, 밤에는 어쩔 수 없이 먹거리를 위해서 당대 최고 그룹인 '아니발 트로일로'밴드에서 반도네온 연주자로 일했지만 낮에는 자신의 음악의 길을 가기 위해 음악 공부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피아졸라는 대담하게도 자신이 작곡한 곡을 하나 들고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머물고 있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ur Rubinstein)의 집을 찾아갔고, 다음 날로 루빈스타인의 친구인 클래식 작곡가인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Alberto Ginastera)를 소개 받아 그에게 6년 동안 레슨을 받게 됩니다. 그 기간 피아졸라는 미친 듯이 작곡에 몰두했습니다. 밤에는 먹거리를 위해 탱고를, 낮에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위해 스승에게서 클래식과 작곡을 배운 것입니다.
그런 노력과 그의 천재성으로 1953년 23세의 나이에, 아르헨티나 작곡 경연 대회에서 '신포니에타'로 수상하고, 프랑스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파리에서 피아졸라는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을 꽃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해준 스승,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와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음악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됩니다..
나디아와의 만남은 그 동안 그가 걸어왔던 음악의 길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린 역사적인 사건이었고 참으로 드라마틱한 일이었습니다.
장학금으로 유학길에 오른 피아졸라는 파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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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법문 감사합니다.()
금싸래기님의 댓글
사랑비가 내리네요. 흠뻑 젖어 봅니다.
쌤. 감사합니다.~~~
조졸님의 댓글
카! 쥑입니더.인연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사실 쉽지가 않아요.결국엔 우째튼 알아야 그 마음을 낼수가 있으니까요.
조졸 님의 댓글
아! 그리고 항상 감사합니다.
초당님의 댓글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사실 좌고우면과 같다." 음... 인생은 실패가 곧 성공이다, 로도 볼 수 있을까요.
윤기붕님의 댓글
원래 좋고 나쁜 일이라는것이 없고 그냥 인연 따라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이 분별이 있으니 색깔을 입히고 이름을 붙여서 머물지 않는 일을 잡으려 할뿐, 실상에는 아무 현상만 있을뿐, 아무 일도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이 법이 무심하기 때문입니다
수용님의 댓글
이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망각!. 그 동안 음악을 잊고 살았네요. 이제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을 가볍고 즐겁게 살아 봐야겠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네~ 우리는 원래 행복한 존재입니다. 늘 여여하십시오.^^
zewon님의 댓글
자리이타의 사랑 물결이 넘쳐 옵니다.ㅎ ㅎ
윤기붕님의 댓글
ㅎㅎ 고맙습니다.^^
푸른숲님의 댓글
글을 읽고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zewon 님의 댓글
<,,,그런 자신이 억울하지 않나요? 우리를 위해서 이 한 법이 붙여준 생각이란 종이, 마치 주인인 것처럼 우리를 부리고 있는 것이 말입니다.> - 억을하지요 참 억울합니다. 이 보다 더 밑진 장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