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법은 거룩하지 않다.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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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법은 거룩하지 않다.
법은
뒷간의 똥 작대기요.
삼베 서근이요.
뜰 앞의 잣나무요.
새벽에 닭 우는 소리요.
누가 업고 가는 시체다.
이외에도 수 없이 많다.
그 이유는 법이 이 세상을 만들고
법이 이 세상이 움직이는 힘이 되고
법이 이 세상을 운용되는 법칙이 되고,
법이 이 세상의 모양으로 드러나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룩한 것도 법이 하고 비천한 것도 법이 하며,
깨끗한 것도 법이 하고 더러운 것도 법이 하고,
착한 것도 법이 하고 악한 것도 법이 하고,
바른 것도 법이 하고 삐뚠 것도 법이 하고,
큰 것도 법이 하고 작은 것도 법이 하고,
높은 것도 법이 하고 낮은 것도 법이 하고,
남자의 것도 법이 하고 여자의 것도 법이 하고,
주인의 것도 법이 하고 종의 것도 법이 하고,
사람의 것도 법이 하고 동물의 것도 법이 하고,
찬바람의 눈도 법이 하고, 계곡의 시원한 바람도 법이 하고
소나무에 걸린 달도 법이요, 그믐밤 어둠도 법이 한다.
이것 이외에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을 때까지 묘사를 해도 모두 법이 할 뿐 다른 것이 없다.
그런데 따로 무슨 법이 거룩하겠는가?
거룩함과 비천함 등의 나눔은
크고 작고 이쁘고 못난 모든 꽃이 저마다 만발하여 아름답게 피어 있는 이 화엄세계를 오직 인간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때 생겨난 인간의 알음알이에서 비롯될 뿐,
이 법계에는 그런 것이 어디에도 없다.
경허(鏡虛)선사는 말년에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를 지나다가 당시 월정사 방장(方丈)인 유인명(柳寅明)스님의 부탁으로 3개월간 화엄경 법회를 열어 설법하게 된다.
그 첫 설법에서 이렇게 시작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
‘대(大)’는 대들보도 대요, 댓돌도 대요, 대가리도 대요, 세숫대야도 대요, 담뱃대도 대이니라.
‘방(方)’은 큰 방도 방이요, 작은 방도 방이요, 지대방도 방이요, 절방도 방이요, 동서남북 사방도 방이니라.
‘광(廣)’은 쌀광도 광이요, 찬광도 광이요, 연장광도 광이요, 광장도 광이니라.
‘불(佛)’은 등잔불도 불이요, 모닥불도 불이요, 촛불도 불이요, 화롯불도 불이요, 번갯불도 불이요, 이불도 불이요, 횃불도 불이니라.
‘화(華)’는 매화도 화요, 국화도 화요, 탱화도 화요, 화병도 화요, 화살도 화요, 화엄경도 화이니라.
‘엄(嚴)’은 엄마도 엄이요, 엄살도 엄이요, 엄명도 엄이요, 엄정함도 엄이요, 화엄경도 엄이니라.
‘경(經)’은 면경도 경이요, 구경도 경이요, 풍경도 경이요, 인경도 경이요, 안경도 경이요, 화엄경도 경이니라.”
- 경허선사 법어집 ‘진흙소에 울음’ 중에서 -
경허선사의 설법은 예전에도 적천단상에 쓴 것이어서 그대로 옮겨 온 것인데,
그 글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볼 때에 이처럼 훌륭한 화엄경 강의는 세상의 어떤 부처도 할 수 없고,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최고의 설법으로, 우주 삼라만상 어느 곳, 어느 것도 화엄세계가 아님이 없고, 불국토 아님이 없고, 부처 아님이 없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설법이다.
그래서 역시 법은 거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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